“암호화폐 125억 보유에 10억 체납"
- 암호화폐, 압류 방법은.
-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4곳에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의 이름·생년월일·연락처 등을 보내 정보가 일치하는 계좌 보유자 명단을 받았다. 3곳에서 1566명을 확인해 이 중 284억원을 체납한 676명의 암호화폐를 압류했다. 암호화폐 자체를 점유하는 게 아니라 쉽게 말해 체납자가 거래소에 출금을 요청했을 때 내주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설마 체납자들이 나올까 반신반의했는데 돌아온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트코인·드래곤베인·리플·이더리움 다양하게도 나오더라. 자료를 받은 날짜 기준 이들이 보유한 암호화폐 평가액은 251억원이다. 압수수색을 한다고 하자 나머지 거래소 한 곳도 뒤늦게 정보를 넘겼다. 고액 체납자 287명이 보유한 151억원 어치 암호화폐를 확인했다. 이들의 체납한 세금은 100억원이다.
- 누가 처음 암호화폐 압류 아이디어를 냈나.
- 나는 암호화폐를 잘 몰랐다.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은어)’ 뜻도 20대 아들에게 투자에 관해 묻다 알게 됐다. 38세금징수과 주성호 조사관이 2018년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
- (주성호 조사관) 당시 외국에서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사 먹었다는 얘길 듣고 징수에 접목할 수 있겠다 싶었다. 투자가 아니라 세금징수를 떠올린 거다(웃음). 하지만 압류할 재산으로 볼 수 있을지 논란이 있었기에 몇 년 동안 설왕설래만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 힘이 많이 빠진 상황에서 올해 1월 과장님이 부임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해보자고 하셨다. 개인이 암호화폐를 가압류한 사례 등 법적 근거를 쌓아가던 중 국세청 발표를 보고 지난 12일 본격적으로 압류작업에 들어갔다.
- 다른 재산 압류와 비교해 효과가 어떤가.
- 설마 이런 것까지 찾아 압류할까 하고 방심했던 것 같다. 거래를 막고 나서 납부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매각했다고 했더니 바로 118명이 12억6000만원을 냈다. 일부러 시기를 맞춘 건 아니지만, 압류 당시 비트코인 값이 8000만원까지 오르는 등 고점을 찍어 반응이 더 컸던 것 같다. 값이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해 많은 체납자가 팔지 말아 달라며 세금을 내겠다고 했다. 매각해달라는 체납자도 있었지만 아직은 납부를 독려하는 단계라 거래소에 매각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서울시 ‘38기동대’, 체납자 676명 암호화폐 압류
- 암호화폐 압류 방식도 한계가 있지 않나.
- 압류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은닉수단이 될 수 있어 말하지 않겠다. 암호화폐에 이은 또 다른 압류 대상을 찾았다. 추진 중이지만 이 역시 무엇인지 절대 밝힐 수 없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 압류해왔다. 200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 도메인 압류가 활발했다. 요즘은 이게 별로 돈이 안 돼 잘 하지 않는다. 2008년에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 처음으로 법원 공탁금을 압류하기도 했다.
- 서울시 발표 이후 각 지자체가 앞다퉈 암호화폐 압류 계획을 밝혔는데.
- 미리 은닉할까 봐 발표를 최대한 미뤘는데 국세청 발표로 알려져 서울시도 공개한 것이다. 체납자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거래소 14곳에 추가로 자료를 요청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거래소에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보도 후 다른 지자체에서 압류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검찰에서도 문의가 온다. 거래소 업무가 거의 마비됐다더라. 시민 칭찬 전화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징수기법을 개발해 이를 현실화하는 데 주력하겠다. 체납 비율을 뜻하는 ‘2%를 찾아서’와 ‘경제금융추적TF(태스크포스)’ 등 징수기법 연구 동아리도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이번 암호화폐 아이디어도 경금추TF에서 나왔다.
고액·상습체납을 추적하는 38세금징수과는 잘 알려진 대로 ‘헌법 제38조 납세의 의무’에서 딴 이름이다. 38기동대라고도 불린다. 이 과장을 포함한 구성원 40명 중 25명이 현장에서 뛴다. 민간회사 출신 채권추심전문가도 6명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직원이 암호화폐 압류에 매달리고 있다. 이 과장은 “코로나19로 현장활동을 못 했음에도 최근 5년 중 올해 1분기 징수실적이 최고를 기록했다”며“과훈(課訓)처럼‘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징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