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는 올해 대학가를 강타한 정원 미달사태와 학내 갈등, 지방대들의 생존 전략, 지방대 미래비전 등을 네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지방대 위기] ①신입생 감소 쓰나미 닥친 지방대학
“신입생 충원 실패. 개선의지 전무. 총장님 이제 그만 합시다.”
원광대는 10여년 전만 해도 ‘한강 이남의 명문대’로 불렸다. 신입생 50% 이상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광주광역시, 전남, 대전 등 타 지역에서 진학했다. 2008년엔 호남권을 비롯한 충청권, 수도권 등 160여 개 학교에서 4만명을 초청해 캠퍼스 투어를 진행할 정도였다. 당시 동원된 버스만 하루 130여 대에 달했다. 최근 학교 측은 서울행 시외버스 승강장까지 마련해 수도권 학생들의 통학을 지원해 왔지만 정원 미달사태를 피하진 못했다.
경북에 있는 4년제 사립대인 A대학은 지난 12일 '(대학) 이전 추진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다. 현재 경북에 있는 학교를 수도권 등 신입생 모집이 수월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한지를 논의하는 기구다. A대학 관계자는 "지방대의 위기 상황에서 생존을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무능한 총장, 개선 의지 전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162곳에서 2만6129명을 추가모집 했다. 전년도(9830명)보다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더 큰 문제는 정시에 실패해 진행한 추가모집 대학 대부분이 비수도권에 있는 지방대라는 점이다. 올해 비수도권의 추가모집 인원은 전체의 91.4%(2만3889명)에 달했다. 반면 서울·경기·인천은 8.6%(2240명) 수준이어서 '위기의 지방대'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지방대의 ‘미달 후유증’은 총장 자리부터 위협한다. 김상호 대구대 총장은 최근 학교재단에 의해 해임이 결정됐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달 올해 신입생 입학 정원을 못 채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구대의 2021학년도 신입생 등록률은 80.8%로 전년도보다 19%포인트 떨어졌다.
대학 앞 신입생 ‘환영’·‘대학 통합’ 현수막
강원도에 있는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지난 2월 25일 업무협약을 맺고 통합에 합의했다. 이들 대학은 ‘1도 1국립대’체제를 구축해 학령인구 감소 위기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강원대 관계자는 "캠퍼스별 특성화를 전제로 한 '연합대학' 설립에 합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살길 바쁜 지방대…통합·학제 개편 몸부림
학제 개편을 고민 중인 곳도 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학기제를 3학기제로 바꾸는 것 같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학제 개편 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0%였던 대구가톨릭대의 올해 입시 최종 등록률이 83.8%를 기록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우 총장은 "최근 새로운 단과대학 과정(사이버대학)을 만들고, 수험생들이 선호할만한 인기 학과 개설(탐정학과 등), 비인기 학과 모집중단 등을 결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전 배재대는 대학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배재성장위원회’를 구성,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배대재는 정원 2048명 모집에 1810명이 등록해 238명이 미달됐다. 등록률이 지난해 100%에서 올해는 88.4%로 떨어진 상태다.
162곳, 2만6129명 추가모집…91%가 지방대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올해 최종 등록률 93.3%로 전년(99.7%)보다 떨어졌다. 지난달 추가모집에서 수능 점수가 없는 지원자까지 개교 이래 처음 받았다는 게 대학 측의 설명이다. 아울러 이 대학은 미래지향적인 대학 느낌이 들도록 '경주캠퍼스' 대신 다른 이름을 찾는 중이다.
친인척 동원 ‘종이원서 제출’ 의혹도
전문가들 또한 지방대의 미래에 대해 대체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육행정학과 교수는 “지방대의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 등이 주된 원인”이라며 “장기적으로 미달 문제가 더 심화할 것이며, 지금 상태로 가면 지방대 고사는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학구조조정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인성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지면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지방대의 위기를 일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음성·대전·익산·대구=김윤호·최종권·이은지·허정원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