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금처럼 다양한 자산 가격의 동반 상승이 100년 전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와 비슷하다"고 할 정도다. 광란의 20년대는 1929년 뉴욕 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 발생 직전의 상황이다. WSJ은 "IT 기술주가 폭등하는 건 20년여 전 ‘닷컴 버블’이 떠올려진다"고 덧붙였다.
실물 자산부터 가상 자산까지 동시 급등
부동산 시장도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의 주택 매매 건수는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6년은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바로 직전이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미국의 현상만은 아니다. 영국과 캐나다, 스웨덴,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이 주택 가격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도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7일 3000시대를 연 코스피 지수는 이달 20일 3220.70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도 지난 12일 20년 7개월 만에 1000선을 돌파했다.
IT주의 폭등세도 '닷컴 버블'의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팩트셋 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 주가는 주가수익비율(PER)의 1130배에 거래되고 있다. 엔비디아도 86배에 거래되고 있다.
암호화폐의 상승세도 무섭다. ‘맏형’ 비트코인은 이달 중순 개당 6만 5000달러(약 7233만원)까지 육박했다. 25일 기준으로 보면 올해 초 대비 66.5%나 높다. 2013년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2명이 장난삼아 만든 도지코인은 지난 16일 개당 45센트까지 오르며 연초(0.47센트)와 비교해 9500% 넘게 폭등했다.
“美 재정·통화정책이 거품 투자 부추겨”
이런 변화를 야기한 바탕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 정책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과거 Fed는 금리를 올려 시장의 과열을 막는 데 앞장섰지만 Fed는 자산 가격 상승을 방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Fed는 ‘저금리가 자산 거품을 키운다’는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고 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미국의 물가 상황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할 방침이다.
거품을 부추기는 건 통화정책만이 아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정부도 가세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1조9000달러의 ‘미국 구제계획’과 2조3000억 달러의 ‘미국 일자리 계획’ 등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구사하고 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바이런 빈 부회장은 “이러한 재정·통화 정책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품 붕괴 위험에도 투자에 면역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자산 가격이 상당 기간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커지는 거품붕괴 공포
그랜섬은 “(자산 시장에 대한) 확신을 잃는 상황이 오면, 모든 부문이 동시에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특히 실물 부분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