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분은 이따금 저를 도와주시는 지역의 전문가입니다. 예기치 못한 재난과 업의 환경 변화로 그간 겪었던 어려움과 새로운 기회를 되짚어보고 객쩍은 농담을 나누다 본격적인 업무를 마친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발길을 돌린 곳은 저만의 소확행인 곳입니다. 이따금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끼니를 챙길 수 있는 행운이 생기면 들르는 몇 군데의 호사가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인 역 앞의 초밥집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왔다는 인사와 지난번 식사한 위치를 기억해 주시는 감동을 선사받습니다. 간단한 식사를 부탁하니 장국이 비워지는 찰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어쩌다 올지라도 단골을 우대하는 살가움에 관계는 빈도보다 시간과 비례함을 느낍니다.
변화하는 환경 적응 노력이
생활의 근육으로 축적되면
‘성장’이라는 훈장 남게 돼
그러고 보면 이 또한 각자가 자신의 일을 오래하기에 얻은 선물입니다. 같은 일을 지속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도, 인내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석회동굴 속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굳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종유석처럼, 단단해지는 과정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차오르며 흔들리지 않는 것은 시간이 지닌 힘과 같습니다. 이처럼 지속의 우직함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교양을 대중들에게 알기쉽게 풀어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벌써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을 정돈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능력이 생겨난 것입니다. 더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까지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비는 사흘만 보지 않아도 괄목상대하여야 한다는 옛 고사가 떠올랐습니다. 일에서 얻은 인연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얻기 어려운 지혜를 노력해 얻어낸 그분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숙련은 연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 이루어집니다. 헬스클럽의 로잉 머신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뱃사공은 매일의 노동에서 절로 근육이 만들어집니다. 하루의 일과를 충실히 보내고 그 일과를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의 근육이 만들어집니다. 오늘도 어쨌든 나의 일을 시작하면서 이것이 소진되는 하루가 아니라 축적되는 것임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적응이라면, 그 적응을 위해 하루를 살아가며 맞는 형질로 변화하려 노력하면 남게 되는 생활의 근육을 우리는 성장이라 부릅니다.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잘 살아남은 내가 얻은 훈장이라는 생각이 들며 아쉬운 부산발 서울행 열차에서 내려 또 새로운 하루를 다짐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