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지난 15일 중앙일보가 ‘공수처장 5급 비서관은 이찬희 전 회장 추천’ 내용의 기사에서 여운국 공수처 차장(54·연수원 23기)도 이찬희 전 회장이 추천했다고 보도하자 “오보”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김진욱 처장이 여운국 차장을 단수 제청하겠다고 발표하기 전날인 1월 27일 당시 변협 집행부는 “이찬희 회장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가장 갖춘 분을 추천했다”라고 밝혔다.
공수처장·차장·비서관은 ‘추천’
당시 변협 대변인=공수처 검사
“내일 발표라 미리 말 못 하지만 회장님이 차장 추천”
- 내일(1월 28일) 오후 5시 공수처 차장 후보자가 2명 제청될 예정이라는데. 대한변협에서 추천한 분이 있나.
- “저희가 말씀을 드리긴 했다. 누구를 말씀드렸는지는 밝히기 어렵다.”
- 어떤 특징을 가진 분인가.
-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가장 갖추고 있는 분이다. 이제 검찰개혁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드렸다.”
- 그럼 김진욱 처장의 예고대로 두 분 정도 추천한 건가.
- “그것도 말씀드리기 어렵다. 나도 사실 누굴 말씀드렸는지 모른다.”
- 이찬희 변협 회장님이 말씀드린 건가.
- “맞다. 회장님이 말씀한 거다.”
- 그럼 회장님에게 물어봐야겠다.
- “답변 못 드리실 거다. 내일 5시에 발표하기로 돼 있어서다. 미리 새어 나가면 그 사람은 아웃이니까 안 된다.”
통화 다음 날인 28일 오후 5시 김진욱 처장은 여운국 당시 대한변협 부회장(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을 공수처 차장 후보자로 제청했다. 당초 2명을 제청하려 했지만, “최종 결정권을 대통령에게 넘겨주려 하느냐”는 비판 여론을 고려해 단수 제청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진욱 처장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서 이의 제기를 하기 어려운 분이다”라고 여운국 부회장을 소개했다. 허윤 수석대변인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가장 갖춘 분을 추천했다”는 말을 한 점과 똑같은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여운국 부회장을 공수처 차장으로 임명했다.
이찬희, 울산변회 회장 아들 5급 비서관에 추천
중앙일보가 “여운국 차장 인선 당시 대한변협 관계자가 이찬희 전 회장의 개입 사실을 밝혔다”며 추가 해명을 요청한 데 대해 공수처 대변인실은 “그 관계자의 추측성 발언 같다”며 대한변협과의 연관성을 재차 부인했다. 이찬희 전 회장은 수차례 문자 메시지와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허윤 수석대변인(현재 공수처 검사)은 19일 “통화 당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대한변협을 방문해 차장 인선과 관련해 비공개 논의를 하셨던 때”라며 “대한변협 회원이 추천될 것이라는 원론적 이야기를 나누신 것으로만 알고 있었고 그 부분을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찬희 전 회장이 특정 인물을 김 처장에게 추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마치 그런 말을 들은 것처럼 와전됐다는 주장이다.
한편 이찬희 전 회장은 김진욱 처장의 김모 비서관(5급 상당 별정직·변호사) 특별 채용에도 사천을 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김 비서관의 아버지는 김용주 당시 울산지방변호사회 회장이자 2018년 더불어민주당 울진군수 경선에 출마한 전력이 있다. 이찬희 전 회장과도 친분이 있다. 김 비서관이 갓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 경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 때문에 특혜 채용 논란도 일었다. 이찬희 전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 비서관을 추천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김진욱 처장의 요청으로 추천했지만,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것이 대한변호사협회라는 기관 차원의 공식 추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개인 관계에 따른 밀실 추천, 사천이란 점이다. 현재 대한변협 김대광 사무총장은 “변협의 인사 추천은 밀실 인사를 방지할 목적으로 반드시 공문으로 하게 돼 있다”며 “김 비서관은 물론 여운국 차장의 경우도 추천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차장 인사 추천’ 밝힌 허윤은 공수처 검사 임명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수처 인사가 능력에 따른 게 아니라 특정 개인의 입김에 휘둘리는 모양새”라며 “이런 식이면 정상적인 수사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평가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진욱 처장 위에 이찬희로 끝나지 않고 그 위에 더 센 여권 실력자가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온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