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비꼬는 듯한 서양식 농담을, 외국인 배우가 나와서 할 줄은 몰랐을 거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는 윤씨의 소감문과 그에 대한 평가를 해석하는 콘텐트가 쏟아지고 있다. 화제가 된 요인으로 첫번째로 꼽히는 건 ‘의외성’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 별세에 애도를 전하더니, 곧장 영국식 농담이 영국인의 허를 찔렀다는 것이다. 윤씨는 “이 상은 특히 콧대 높은(snobbish) 것으로 알려진 영국인들에게 좋은 배우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 매우 기쁩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돌직구’ 수상 소감이었던 셈이다.
“외국인 배우의 돌직구 농담, 예상 못 했을 것”
지혜성(40)씨는 “영국의 고상함에 집착하는 문화는 영국신사, 영국 왕실 등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외국인 배우가 그런 문화를 통찰력 있고 유머러스하게 꼬집으면서도 동시에 본인을 높이는 농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 반응”이라고 봤다.
타문화에 배타적인 영국의 인식을 재치있게 지적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외국계 기업에서 통역사로 활동중인 한 모(30)씨는 “영국인의 콧대 높은 이미지는 서구권에서 공유하는 일종의 암묵적인 사회인식이다. 아일랜드인은 술을 좋아하고 일본인 소심하다는 등의 편견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국인 입장에서도 다른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인 “블랙코미디 같았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영국인 대학생 메리(23)는 “수상 소감에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끝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필립공에 대한 애도를 표하면서 농담을 건네다니 유연하면서도 재치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snob’이라는 단어는 속물적이거나 잘난 척하는 친구들에게도 자주 사용한다. ‘snobbish’ 표현을 사용해서 영국인에 대한 인상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일부 네티즌은 “브로큰 잉글리시로 얘기하는 윤씨의 농담을 즐겁게 받아 들이는 영국인들의 유머 감각과 여유를 더 인정해 줘야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영국 아카데미상의 방송 주관사인 BBC는 수상소감 이후 SNS를 통해 “우리가 가장 좋아한 수상 소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영국의 영화 평론가이자 행사 관계자인 리안나 딜런 역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수상! 대단한 연설! 우리는 콧대 높은 사람들(snobbish)이야”라는 글을 SNS에 올리는 등의 유쾌한 반응을 보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