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고거래 9년 차김동주(37)씨는 새 물건을 살 때 영수증과 패키지를 그대로 보관한다. 중고로 되팔 걸 염두에 두고서다. 가전제품을 좋아하는 김씨는 최신 기종을 살 때마다 기존 제품은 중고로 내다 판다. 그의 거래 원칙은 ‘풀박’(풀박스)과 ‘쿨거’(에누리 없는 쿨거래). 김씨는 “닌텐도 최신 버전을 어렵게 구해 한 달 정도 써보고 필요 없어져 더 비싸게 내놨는데도 사겠다는 사람이 몰렸다”고 즐거워했다.
지갑 얇은 2030, 가성비 좇는 소비
중고 명품 싸게 사서 쓰다 되팔아
한정판에 열광, 웃돈 얹어 사기도
환경·실속 두 토끼, 한해 20조 거래
중고거래 60%가 MZ세대…가성비 좇는 합리적 소비
그렇다면 MZ세대가 중고거래에 꽂힌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현실적인 이유가 앞선다. 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인 이들은 비교적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 소비를 중시한다. 지난해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MZ세대 2233명의 소비성향을 조사한 결과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을 추구하는 가성비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51.2%에 달했다. 가격 대비 큰 만족감을 추구하는 가심비 소비를 선호한다는 답변(37.3%)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런 MZ세대가 키운 게 중고명품 시장이다. 지난해 9~11월 중고나라에서 명품을 거래한 이용자의 절반 이상(59%)이 20~30대(40대 포함 시 84%)였다.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시대의 나를 위한 소소한 사치”다. 또 MZ세대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그래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한정판(레어템)에 열광한다. 이런 물건은 재테크 가치도 크다. 한정판 스니커즈나 명품백(샤넬)에 웃돈을 얹어 되파는 ‘슈테크’, ‘샤테크’는 MZ세대의 일상이 됐다.
소유보다 경험이 중요하고 '득템' 재미도
패션을 전공한 대학생 신혜인(22) 씨는 주로 옷을 중고로 사고판다. 신씨도 한때는 저렴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나 보세를 구매했었지만 이젠 아예 눈길조차 안 준다. “내구성이 떨어져 다시 팔 수도 없고 한철 입고 나면 진짜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씨는“값비싼 브랜드도 중고로 다시 팔면 저렴한 옷을 사 입는 것과 가격이 비슷하다”고 했다.
소비 줄여 자원순환 기여도 중요한 가치
그사이 중고제품을 거래하는 ‘리커머스’ 시장은 2008년 4조원에서 2019년 20조원 규모로 커졌다. 국내 이커머스업계 선두인 쿠팡의 한 해 거래액(21조원)과 엇비슷하고, 향후 100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엔 하루 사용자(DAU)가 156만명이 몰려 쿠팡(397만명)에 이어 2위에 올랐다(지난해 4월). 이러니 대기업들도 뛰어든다. 롯데쇼핑은 중고나라 지분 93.9%(1000억원)를 인수하는 사모펀드에 300억원을 투자했고, 네이버는 최근 스페인 1위 리커머스 ‘왈라팝’에 약 1550억원을 투입한 데 이어 카페에 당근마켓과 유사한 '이웃톡'을 신설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풍요로운 시대에 자라서 여러 가지 물건을 경험하길 원하면서도 그만큼 돈은 부족하니 중고거래라는 합리적 방식을 찾아나선 것”이라며 “그와 동시에 중고거래를 통해 MZ세대가 중시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원순환에 기여한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더해졌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