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움트는, 수목원 가기 딱 좋은 계절

중앙일보

입력 2021.04.0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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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벚꽃이 졌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수목원으로 가면 꽃보다 싱그러운 연둣빛 숲을 만날 수 있다. 4월 현재, 전국에 68개 수목원이 있다. 사진은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 층층나무가 연둣빛 새순을 틔운 모습. [중앙포토]

2021년 4월 현재 산림청에 등록된 전국 수목원은 68개다. 수목원마다 특징이 다르고 사연도 다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엔 ‘국립’ 두 글자가 붙은 수목원이 모두 세 곳 있다. 국립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 이들 국립수목원은 여느 민간 수목원과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국립수목원 세 곳은 저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연으로만 따지면 민간 수목원이 훨씬 많다. 무릇 수목원이란 사람이 자연을 흉내 내 일군 인공 공간이다. 하여 수목원마다 각별한 사연이 배어 있다. 흥미로운 건, 긴 세월 남다른 인연으로 이어진 수목원도 있다는 사실이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맺어진 수목원들의 사연은 꽃과 나무처럼 아름답고 곡진하다. 4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수목원 다녀오기에 좋은 시절이다.

전국의 가볼 만한 숲 7곳
오직 자생식물, 포천 국립수목원
호랑이 네 마리, 백두대간수목원
온실로 승부, 도심 속 세종수목원

의형제 인연 깃든 천리포·남이섬
LG 가문 나무 사랑 결실 두 곳도

국립의 품격
 

아시아 최대 수목원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37개 전시원을 갖췄다. 사진은 시야가 탁 트인 암석원.

국립 수목원은 산림청이 직·간접으로 운영하는 수목원을 이른다. 하여 연구 목적이 관람 목적을 우선한다. 화려하고 요란한 풍경이 여느 민간 수목원보다 덜한 까닭이다. 대신 각별히 관리한 자연이 있어 안식을 누리기엔 더 좋다. 예약제로 운영하거나 산간 오지에 틀어박혀 있어 방문객 밀집 우려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국립수목원은 경기도 포천과 남양주에 걸쳐 있는 광릉숲에 들어앉아 있다. 1468년부터 왕실림(王室林)으로 가꿨으니 무려 553년 역사를 헤아린다. 1987년 ‘광릉수목원’ 간판을 달고 방문객을 받기 시작했고, 99년 ‘국립수목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산림청 직속 연구기관이자 3대 국가 수목원 중 큰 형다운 품격과 자존심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한국 자생식물만 철저히 이력을 관리하며 가꾼다. 희귀 동식물도 많이 산다. 5월 초 개화하는 복주머니란·광릉요강꽃은 국립수목원 바깥에선 보기 힘든 멸종위기 식물이다. 크낙새·장수하늘소·하늘다람쥐 같은 천연기념물도 많이 산다. 국립수목원은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아 느긋하게 봄을 만끽하기에도 좋다.
 
2018년, 국립수목원은 동생을 얻었다. 경북 봉화군 첩첩산중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개장했다. 개장 당시부터 ‘아시아 최대’라는 수식어로 이목을 끌었다. 전체 면적이 51㎢로, 종로구 2배 크기다. 37개 전시원 중 ‘호랑이숲’이 단연 인기다. 호랑이숲은 답답한 동물원 우리와 다르다. 축구장 4개 크기 방사장에서 4마리 호랑이가 산다. 원래 5마리가 살다가 국립수목원에서 온 두만이가 지난해 숨졌다.
 

국립세종수목원은 국내 최대 규모 온실을 갖췄다. [중앙포토]

국립 수목원 중 막내인 세종수목원은 생김새가 영 딴판이다. ‘도심형 수목원’을 표방하며 지난해 세종시 신도심 한복판에 문을 열었다. 규모는 형들보다 작지만 온실만큼은 꿀리지 않는다. ‘사계절 전시 온실’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바나나와 파파야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열대온실에 들어서면 하와이나 동남아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 들고, 부겐빌레아꽃 흐드러진 지중해온실은 스페인의 예쁜 마을을 옮겨놓은 것 같다. 온실 식물 중 상당수는 큰형인 국립수목원에서 옮겨 심었다.
 
사계절 전시온실은 붓꽃을 형상화했다. 붓꽃은 세종시가 속한 ‘온대 중부 권역’을 대표하는 식물이다.
 
수목원 평행이론
 

천리포수목원에는 다양한 수생식물이 사는 연못도 있다. [중앙포토]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최초 민간 수목원이고, 강원도 춘천 남이섬은 한류 관광 1번지다. 남이섬은 정식 수목원은 아니지만, 220여 종 1만여 그루 나무로 울창한 나무 천국이다. 두 곳의 인연은 반세기가 넘는다. 천리포수목원을 일군 민병갈(1921~2002) 박사와 남이섬을 시작한 민병도(1916∼2006) 회장이 의형제 사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47년 시작됐다. 민 박사가 미군정 재정담당관이던 시절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민 회장을 만났다. 동생 민 박사가 형 민 회장보다 먼저 세상을 뜰 때까지 두 사람은 50년 넘게 서로 의지하며 나무를 심었다. 민 회장은 1979년부터 97년까지 천리포수목원 이사로 참여했고, 민 박사는 천리포수목원에서 키우던 묘목을 남이섬에 여러 차례 전달했다.
 

남이섬 겹벚꽃. 남이섬은 수목원 못지않은 나무 세상이다. [사진 남이섬]

민병갈 박사의 원래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다. 79년 귀화하면서 형 민병도 회장의 이름을 본 따 개명했다. 형의 성씨를 따라 여흥 민씨가 됐고, 돌림자 ‘병(丙)’ 자도 빌렸다. 2012년 민병갈 박사 10주기를 맞아 천리포수목원과 남이섬은 형제 확인서를 교환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민병도 회장을 기리는 수재원이 있고, 남이섬에는 천리포수목원을 대표하는 목련원이 있다.
 

명품 분재가 즐비한 베어트리파크 야외분재원. [중앙포토]

세종시 베어트리파크와 경기도 광주 화담숲은 LG그룹의 대를 이은 나무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고모부와 조카의 인연이다. 베어트리파크 이재연(90) 회장이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둘째 사위인데, 1966년부터 경기도 의왕에서 일군 농장 ‘송파원’에서 LG그룹 구 구본무 회장이 어릴 적 뛰어놀았다. 그 기억이 화담숲의 단초가 됐다. 화담(和談)은 구본무 회장의 아호다.
 
지금도 이재연 회장은 1주일에 5일씩 세종에 내려가 나무를 돌본다. 구본무 회장도 생전에 수시로 화담숲을 드나들었다. 전지가위 들고 수목원 곳곳을 누볐는데, 탐방객 누구도 그가 LG그룹 회장이란 걸 눈치채지 못했었다.
 
손민호·최승표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