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라는 전쟁터에 사랑의 꽃이 피었다.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은 아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매개로 태어난 가슴 따뜻해지는 ‘브로맨스’다. 포항 스틸러스 팬들과 올 시즌 포항에서 전북 현대로 유니폼을 바꿔입은 러시아계 독일인 공격수 일류첸코가 주인공이다.
이적 후 친정팀 첫 방문서 연속골
기쁨 숨긴 선수에 홈 팬들도 축하
전쟁 같은 K리그에도 ‘브로맨스’
K리그 관중석 걸개는 대개 비판 또는 비난 내용이다. 백승호 이적 논란 직후 전북과 맞붙은 수원 삼성 홈구장에는 ‘정의도 없고 선도 없고’, ‘지성도 없고 상식도 없다’, ‘앗 뒤통수! 14억보다 싸다’ 등 온통 백승호와 전북을 비난하는 걸개였다. 이적 추진 과정에서 소속팀과 마찰을 빚은 대구FC 공격수 정승원에 대해 대구 팬들은 ‘승리보다 원하는 건 진심과 반성’이라는 걸개를 내걸어 꾸짖었다.
후반 36분 구스타보와 교체된 일류첸코는 벤치로 향하기 전 포항 팬들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김승대, 최영준 등 과거 포항에 몸담았던 선수들과 함께 포항 서포터스석을 찾아 거듭 고개 숙였다. 포항 팬들은 ‘돌아온 포항의 아들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과 그라운드에 있던 모두에게 승패나 골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전쟁 같은 승부, 그 안에서도 아름다운 사랑과 존중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포항 팬들과 일류첸코가 보여줬다. 응원을 주고받은 당사자는 물론, 보는 이의 가슴마저 따뜻하게 했다. 선수도 팬들도 명실상부 ‘일류’였다. ‘K리그 브로맨스’에 모두가 특별한 감동을 맛봤을 그 시각, 딱 한 사람만 씁쓸하지 않았을까. 친동생처럼 아꼈던 일류첸코에 2골을 얻어맞고 패장이 된 김기동 포항 감독 말이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