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세계 경제의 '폭풍 성장'은 ‘기저효과’ 다. 골이 깊었던 탓에 산이 높아 보이는 것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 속 중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는 역성장했다. 6.9%는 감염병의 일격에 휘청댔던 세계 경제가 전열을 정비하고 회복의 궤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뿐이다.
속내를 뜯어보면 마냥 환호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의 질주에 따른 착시 효과라서다. 블룸버그는 “1분기 선진국에서는 미국 경제가 반등하는 동안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일본은 위축되고, 신흥국의 경우 중국만 성장하고 브라질·러시아는 뒤처졌다”고 보도했다.
미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이날 내놓은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따르면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6.3%다. 중국은 8.5%를 기록할 전망이다. 두 나라 모두 지난해 10월 전망치(미국 4.1%, 중국 6.0%)보다 상향 조정됐다. 반면 유로존(6.0%→4.4%)과 영국(4.0%→3.8%), 일본(5.0%→2.5%)과 러시아(3.5%→2.7%), 브라질(0.5%→-1.0%)의 성장률 전망치는 모두 낮아졌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세계 경제를 부양한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과 중국만 잘 나가는 ‘K자 양극화’가 나타난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재정 투입이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백신 접종 현황에 따르면 5일 기준으로 유럽연합(EU·8.9%)과 브라질(5.6%), 러시아(3.6%)의 접종률은 10%에 못 미친다. 일본은 0.4%에 불과하다. 이들 나라는 코로나19 재확산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독일과 프랑스 등은 재봉쇄에 들어갔다.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반면 미국의 접종률은 25%에 이른다.
캐런 다이넌 PIIE 선임연구원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현재 세계 경제 부양책은 백신”이라고 평가했다. 백신 보급이 잘 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경제 성장률 차이가 극명하다는 얘기다.
미국도 메가톤급 부양책을 펼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1조9000억 달러의 ‘미국 구조계획’ 경기부양안을 실시했다. 여기에 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법안인 ‘미국 일자리 계획’까지 추진할 예정이다.
브루스 카스만 JP모건체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2020~25년 미국과 신흥국들 사이 경제 성장률 격차가 올해만큼 큰 경우를 보지 못했다”며 “부분적으론 백신 유통의 차이에서 비롯됐고, 각국의 경제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기 회복이 신흥국엔 악몽?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경기 회복은 일반적으로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국만의 독주는 위험하다.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고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 신흥국에 투자됐던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다. 지난 2013년의 ‘긴축 발작(tapering tantrum)’이 재연될 수도 있다.
긴축발작은 2013년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 종료 의사를 내비치자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며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등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친 일을 말한다.
이미 조짐이 보인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신흥국에서만 51억6000만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신흥국에서 자본이 유출된 건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이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1.7%까지 올랐다. 자본 유출을 걱정한 터키와 브라질, 러시아 등이 4월 들어 기준금리를 잇달아 인상했다. 중국도 미국 움직임을 의식해 경기부양 강도 축소에 나섰다.
IMF “SDR 발행해 신흥국 지원하자”
SDR은 IMF가 발행하는 준비 자산으로 달러나 유로 등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으로, IMF가 개도국에 유동성을 공급해 자금 유출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IMF는 5~11일에 개최되는 IMF와 세계은행(WB)의 연례 춘계회의에서 이 방침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대응방안의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IMF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동의할지 낙관할 수 없어서다. WSJ는 “미 공화당은 IMF의 SDR이 권위주의 국가나 테러 지원 국가에 도움을 주는 걸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