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국립대 대학원생 A씨는 2018년 한 모텔에서 술에 취한 대학 후배 B씨에 대해 강제로 스킨십을 한 혐의(준유사강간)로 고소당했다. B씨는 학교 인권센터에도 성희롱ㆍ성폭력을 당했다며 A씨를 신고했고, 대학 측은 조사를 마친 뒤 A씨에 정학 9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후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A씨는 학교 측에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 ‘징계 무효’ → 2심 ‘징계 정당’ 뒤집힌 판단
하지만 1년 후인 지난해 10월 2심은 A씨가 받은 징계가 부당하지 않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은 형사 사건으로서 ‘준유사강간죄’ 여부를 따지는 것과 민사·행정소송에서 징계가 정당한가를 판단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A씨 소속 대학의 징계 규정 및 인권센터 규정은 ‘성희롱’에 대해 “성범죄의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상대방의 성적 굴욕감, 수치심,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라고 정했다. 구체적으로 성희롱에는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동과 요구 등 언어적, 물리적, 정신적인 행위를 통해 개인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A씨가 징계를 받은 건 성범죄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B씨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게 2심 판단이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서울 서초동. 김성룡 기자
‘묵시적 동의’ 여부 어떻게 판단했나
A씨의 일부 진술이 ‘B씨가 동의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A씨는 성적 행위 뒤 3시간여가 지나 모텔을 나온 이유를 묻는 징계위원의 질문에 “정말 과정이 길었다. (신체 접촉을 했다가) 한참 누웠다가 이렇게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은 이를 근거로 “B씨가 만취 및 수면 상태로 인해 A씨의 행위에 적절히 동의 여부를 밝힐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A씨는 이를 인식한 채로 장시간에 걸쳐 B씨의 반응을 살피며 성적인 행위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은 “A씨에 대한 학교의 징계는 정당하고, 대학 내 신입생 환영회 등 술자리에서의 성희롱ㆍ성폭력이 다수 발생해 이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요구가 사회적으로 커진 점 등을 고려하면 정학 9개월의 처분 역시 적정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2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