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이혼녀야, TV 나와선 안돼' 대부분 날 싫어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04 17:51

수정 2021.04.0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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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 시간)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사진 NYT 캡처]

“스트레스가 많아요. 사람들이 이제 나를 축구선수나 올림픽 선수처럼 생각하는데 부담스럽기도 해요.”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74)이 3일자(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서다. ‘미나리’는 그의 여우조연상과 앙상블상(출연진 전원)‧남우주연상(스티븐 연) 등 미국배우조합상의 3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지난해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최초로 앙상블상을 받은 데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서울 자택에서 NYT 기자와 화상 인터뷰한 윤여정은 “사람들이 내가 수상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는다”며 “나는 계속 그(봉준호 감독)에게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농담 반 하소연했다.  

NYT, 美배우조합상 전날 윤여정 집중 조명
"고요한 풍모에 자연스러운 기품의 배우"

"이 부담감, 다 봉준호 감독 때문"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MINARI)'.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출연. 국내에선 3월3일 개봉했다. [사진 판씨네마]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이 1980년대 자전적 가족 이민사를 담은 ‘미나리’는 지난해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심사위원대상‧관객상 수상을 시작으로 올 2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미국 안팎에서 100개에 가까운 영화상을 받았다. 특히 한국에서 온 엉뚱한 외할머니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이 30관왕에 달하는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크게 주목받았다.
 
NYT는 ‘연기를 꿈꾼 적 없었던 그녀가 이제 ‘미나리’로 오스카(아카데미상 애칭) 후보에 올랐다’는 제목의 이날 인터뷰 기사에서 윤여정이 캐나다 밴쿠버에서 촬영을 마친 애플TV 미국 드라마 ‘파친코’, tvN 예능 ‘윤스테이’ 등 최근 활동을 다뤘다. 또 대학생 때 방송국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1970년대 스타 배우가 된 데뷔 초도 소개했다. 그가 결혼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해 10여년간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주부로 살다 이혼 후 한국에서 다시 배우생활을 하며 힘겨웠던 시절도 담담히 되짚었다.  
 

"윤여정은 이혼녀야, TV 나와선 안 돼" 그랬죠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속 출연진. 왼쪽부터 스티븐 연, 앨런 S. 김, 윤여정, 한예리, 노엘 게이트 조.[사진 판씨네마]

“‘윤여정은 이혼녀야. TV에 나와선 안 돼.’ 그땐 사람들이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저를 아주 좋아해 주세요. 이상하죠. 하지만 그게 사람들이죠.” 인터뷰에서 윤여정의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방송사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데 대해 “부끄럽다”며 “대부분의 사람은 영화를 좋아하거나 연극을 좋아했지만 제 경우엔 그냥 사고였다”고 했다. “솔직히 연기가 뭔지 몰랐다”면서 “연기를 학교에서 배우지도, 영화를 공부하지도 않아서 열등감이 있었다. 그래서 대사를 받으면 아주 열심히 연습했다”고 했다. 이혼 후 복귀했을 땐 “당시 저는 작은 역할들만 맡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저를 싫어했다. 그만두거나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남았고 연기를 즐기고 있다”고 돌이켰다.  


일흔넷, 여전히 살아남아 연기 즐기죠 

그의 스크린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부터 윤여정의 팬을 자처한 정이삭 감독은 NYT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윤여정 본인의 삶과 자세가 (정 감독의 외할머니를 모델로 한) 영화의 역할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에서 윤여정은 넉넉한 마음씀씀이와 진지한 태도로 유명한 배우인데 그런 점이 “‘미나리’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봤다”고 설명했다.  

25일(현지 시간)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 팟캐스트 '배우 언니'(https://www.joongang.co.kr/Jpod/Channel/7)가 한국배우 최초 후보에 오른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 경쟁자들을 분석했다. [사진 배우 언니]

“정 감독이 아주 조용한 사람이고 제 아들이면 좋을 만큼 좋아한다”고 칭찬한 윤여정은 “저 같은 73세(생일이 지나지 않은 미국식 나이) 아시아 여성이 오스카 후보에 오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라며 “‘미나리’가 많은 선물을 갖고 왔다”고 말했다. 다만 추후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선 자신의 부족한 영어를 짚으며 회의적으로 전망했지만 배울 기회가 있으면 기꺼이 노력할 것이라 했다.
 
NYT는 인터뷰로 만난 윤여정에 대해 “생각에 잠긴 표정에서 종종 상냥한 미소와 쾌활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고요한 풍모엔 자연스러운 기품이 있었다”며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말하면서도 단호했다”고 묘사했다.
 
‘미나리’는 오는 25일(현지 시간) 열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그의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작품‧각본‧감독‧남우주연‧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 연기상 수상 기록을 세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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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