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는 전 세계가 빈틈없는 물류망으로 촘촘히 연결해 공생하는 글로벌 시대를 실감하게 했다. 단순 사고가 ‘물류 동맥경화’를 넘어 국제유가 등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연쇄 파급효과를 낸 이유다.
56년 이집트 나세르, 운하 국유화
배 한 척에 막힐 정도 허술한 실상
글로벌·디지털 시대 지정학 주목
미·중 요충지 확보 경쟁할지 관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 세계 교역의 약 90%가 해상으로 이뤄진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운하는 2020년 기준 연간 1만9000척의 선박이 통과했다. 무게로 12억5000만t이며 전 세계 교역량의 12%다. 수에즈운하는 길이 193.5㎞에 폭은 수상에선 313m이고 수심 24m의 밑바닥에선 121m다. 이런 좁은 수로에 컨테이너선이 대각선으로 걸리면서 물류가 일시 위기를 겪었다. 지정학적 요충지인 수에즈운하가 이렇게 좁고 허술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수에즈운하는 20세기 들어 1956 ~59년과 67~75년 두 차례나 폐쇄됐다. 전쟁 때문이었다. 56년 6월 26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18~70년, 재임 56~70년) 대통령이 영국 소유이던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56년 7월 26일 수에즈운하 지구를 침공하면서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동란)을 일으켰다. 항공모함·전함·순양함·잠수함에 공수부대를 동원한 영국·프랑스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운하 주변을 점령했다.
시나이반도에 휴전선을 긋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제1차 유엔긴급군(UNEF)을 평화유지군(PKO)으로 파병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기원이다. 당시 캐나다 외무부 장관으로 이를 제안한 레스터 피어슨(1897~1972년)은 이듬해인 5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아 수에즈운하에서 철수하면서 강대국 지위의 상실을 절감했다. 이로써 지정학적 요충지를 선점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내세우며 약소국의 주권을 무시하던 제국주의 시대는 사라졌다. 대국과 소국 개념도 시효를 마쳤다. 힘으로 남의 나라와 국민을 깔보고 괴롭히는 식민주의도 종말을 고했다. 유엔이 창설되면서 국제사회엔 주권존중·호혜·평등·상호존중·공존공영의 시대가 열렸다. 냉전이 가속하면서 세계 각국은 미국과 소련의 우산 아래에서 국제관계를 추구하게 됐다. 수에즈 동란은 중요한 교훈을 안겨준다. 글로벌 패권은 군사력·경제력 넘어 도덕성과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 말이다.
문제는 중국이 이미 한 세기도 더 전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보여준 계책을 답습해 세계 곳곳에서 초크포인트 수집에 나선다는 점이다. 우선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지부티의 항만을 임대해 기지를 설치했다.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어지는 오만 해에 접한 파키스탄의 항구 과다르도 개발 중이다. 인도양에 접한 스리랑카의 남단 함반토타 항구도 확장하고 있다. 벵골 만에 있는 방글라데시 차토그람(과거 영어식 치타공에서 벵골어로 개명)에서도 공사가 한창이다. 미얀마에선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송유관 건설과 항구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일대일로 전략이다. 새삼스럽게 지정학적 가치를 일깨워준 수에즈운하 사태가 앞으로 미·중 각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쏠린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