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희망봉

중앙일보

입력 2021.03.3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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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스포츠팀장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소설 『슈나벨레보프스키씨의 비망록으로부터(Aus den Memoiren des Herren von Schnabelewopski)』는 유령선 이야기다. 유럽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가던 배의 네덜란드인 선장은 폭풍에도 항해를 계속했다. 분노한 악마는 선장에게 바다를 떠도는 저주를 내린다. 저주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 풀리고, 7년에 한 번 상륙해 여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83)는 이 소설을 모티브로,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을 작곡했다. 오페라와 동명의 배가 실제로 있었다. 배는 164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항했다. 선장 헨드릭 반 데르 데켄의 무리한 항해로 배는 폭풍을 만나 침몰했다. 이 모든 것들의 배경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앞바다다.
 
아프리카 남단을 가장 먼저 항해한 유럽인이 누군지는 역사의 논쟁거리다.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1451~1500)가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1488년 희망봉에 닿았다는 게 정설이었다. 현대 역사학계는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e)』 속 기록을 근거로 그 시점을 그보다 과거로 돌렸다. 이집트 제26대 왕조 네코 2세 시절 페니키아인이 희망봉 앞바다를 항해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다. 기원전 600년 무렵이니, 디아스에 2000년 이상 앞선다. 어쨌든 해당 지역에 ‘이름’을 붙인 쪽은 디아스다. 그는 남쪽으로 향하던 배가 동쪽으로 방향을 트는 지점의 육지 돌출부를 ‘폭풍의 곶(Cabo das Tormentas)’으로 명명했다. 포르투갈 주앙 2세가 그곳의 이름을 현재 우리가 부르는 ‘희망봉(Cabo da Boa Esperança)’으로 바꿨다.
 
지중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의 좌초로 막혔다. 국내 선사 HMM(옛 현대상선) 등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해운사들이 희망봉을 우회하기로 했다. 거리가 1만㎞ 가까이 길어져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배들이 희망봉을 우회하는 건 중동 지역에 전쟁이 벌어진 1967~75년에 이어 두 번째다. 배들이 희망봉을 찾는다는 건 지구촌에 변고가 생겼다는 거다. 주앙 2세가 이를 안다면, 그래도 그곳에 같은 이름을 붙일까.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