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의 정체는 바로 독수리입니다. 몽골과 중국 등지에서 서식하다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죠. 다 자란 성체의 날개 길이는 2m에 달합니다. 떼 지어 다니며 동물의 사체를 찾아 먹지만, 이렇게 수백 마리가 한자리에 모이는 건 진귀한 광경입니다. 이 조용한 들판에서 독수리들의 만찬이 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니띵] '자연의 청소부' 독수리를 위한 식당
주 3회, 고기 200㎏ 준비하는 '독수리 식당'
아침 9시가 되자 회원들이 커다란 박스 8개를 트럭 짐칸에 줄지어 옮깁니다. 박스 안에는 20㎏이 넘는 돼지고기 덩어리가 들어있습니다. 인근 시장 정육점에서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부위를 사온 겁니다.
우리나라의 겨울 철새 중 몸집이 가장 큰 새답게 독수리는 먹성도 남다릅니다. 200㎏에 달하는 돼지고기를 들판에 뿌려두면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 많은 고기를 다 먹어치우는 데 15분이 채 안 걸린다고 해요.
하늘의 제왕? 사냥 못 하는 '청소부'
흰머리수리는 북아메리카 생태계 먹이사슬 최상단에 있는 포식자지만, 독수리는 사냥도 할 줄 모릅니다. 성격도 온순한 편이라 자기보다 한참 작은 덩치의 까치·까마귀에게 쩔쩔매기도 하죠. 주식은 멧돼지와 고라니 등 동물의 사체입니다. '제왕'보다는 '청소부'에 더 가까운 새입니다.
ASF·코로나로 굶주려…"먹이 줘야 피해 막아"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철새 도래지에서 열리던 독수리 먹이 주기 행사가 취소되는 등 악조건이 겹쳤습니다. 먹이를 먹지 못해 탈진하거나 굶어 죽는 독수리가 속속 나오고 있죠. 지난달엔 경기 연천에서 굶주린 채 쓰러진 독수리 한 마리가 구조되기도 했습니다.
윤도영 임진강생태보존회 부회장은 "'독수리가 전염병을 옮기고 다니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많이 하는데 오히려 사람이 먹이를 챙겨줘야 민가까지 내려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왕준열·황수빈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