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통] 코로나 탓만이 아니었다, 세종시 결혼·출산 줄인 주범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2021.03.27 05:00

수정 2021.03.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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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2년째를 맞은 ‘새댁’ 정모(34)씨. 남편 직장으로 통근 버스가 다니는 세종시로 집을 옮겨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자녀 계획이 있어 육아하기도 좋고 새 아파트도 많은 세종시로 이사를 생각했다. 그런데 부동산을 다녀보니 집값이 서울 뺨치게 비싸더라”며 “분양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지금 자산으로는 세종 전세도 힘들어 이사를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세종시도 더는 저출산 고령화 무풍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아이 울음소리(출생)도 줄었고 웨딩마치(결혼)도 덜했다. 2012년 세종시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1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와 아파트, 상가 등이 가득 들어서 있는 세종시 도심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무슨 일이

지난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 세종시에서 344명 아기가 태어났다. 지난해 같은 달 373명과 비교해 7.8% 줄었다. 전국 평균(-6.3%)보다 출생아 수 감소 폭이 더 컸다.

전국 최고 세종시 집값 상승률
출생ㆍ혼인 감소 부메랑

2012년 공식 출범한 세종시는 그동안 저출산 무풍지대로 꼽혔다. 전국에서 나 홀로 결혼도, 출산도 늘어나는 도시였다. 행정 중심 복합도시(특별자치시)로서 안정적인 직장ㆍ보수, 민간기업에 비해 탄탄한 육아ㆍ복지 제도 등을 갖춘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과 가족의 이주가 많았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기대한 인근 지역 젊은층이 많이 이주해 혼인ㆍ출생 증가에 큰 몫을 했다.
 

급등한 세종시 집값, 저출산 부메랑

이랬던 세종시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세종시 출생아 수는 총 3500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8.4% 감소했다. 연간으로 출생아 수가 줄어든 건 세종시 출범 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결혼도 줄었다. 지난해 1854쌍이 결혼했는데 전년 대비 9.1% 감소다. 역시 세종시 출범 이후 첫 감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만으로는 세종시의 혼인ㆍ출생 감소를 설명할 수 없다. 이미 2019년부터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청사ㆍ공공기관 이전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긴 했지만, 이 역시 주된 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분기(4~6월)를 기준으로 세종시 전체 취업자(17만7000명) 가운데 공공ㆍ사회보장 행정업 종사자는 3만2000명(18.1%)에 불과하다. 사회복지 서비스업 종사자(9000명)를 합쳐도 23.2% 수준이다. 
 
세종시 출생율ㆍ혼인율을 끌어내린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건 따로 있다. 바로 급격히 오른 세종시 부동산 가격이다.

세종시 혼인·출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게 왜 중요해  

출범 초기 세종시는 인근 지역 예비부부와 신혼부부에게 인기 지역으로 꼽혔다. 대전ㆍ천안ㆍ청주ㆍ공주시 등 인근 도시로의 출퇴근이 가능한 데다, 아파트가 대규모로 꾸준히 공급된 덕분이었다. 합리적 가격으로 새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출범 초기와 다르게 최근 몇 년 사이 세종시 집값이 상승하며 이 장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올 초 불거진 국회 이전 이슈는 안 그래도 오르고 있던 세종시 부동산 가격에 불을 붙였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세종시 주택 가격은 37.1% 급등했다. 세종시 출범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서울(2.7%)을 저 멀리 제치고 전국 1위에 올라섰다. 9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한 전국 집값 상승률(5.4%)의 7배에 육박한다. 전·월세 시세도 따라 고공행진 했다.
 
세종시 인구당 출생ㆍ혼인 비율(조출생률)은 여전히 다른 시도에 압도적으로 높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하강 흐름이 뚜렷하다. ‘부동산 급등=저출산 액셀러레이터’란 공식이 세종시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불러온 나비 효과다. 세종시 주택 가격 상승이 지난해 극심해진 만큼 앞으로 출생과 혼인 감소가 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주택자는 무주택자보다 출산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며 “부동산 불균형은 경제 불균형을 넘어 사회 불균형을 가속할 문제”라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