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라임사태' 막겠다는 금소법, 25일 시행에 금융권 대혼란

중앙일보

입력 2021.03.24 18:44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25일 '제2의 라임사태'를 막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다. 사진은 은행에서 고객이 상담받는 모습. 중앙포토.

 
직장인 A씨는 2019년 말 한 은행권 복합점포에서 사모펀드(무역금융펀드)에 가입했다. 100% 손실 없이 안전한 데다 연 4% 이자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에 서류 절차 없이 3억원을 맡겼다. A씨는 불안한 마음에 판매 담당자의 얘기를 녹음 파일로 보관했다. 안전한 상품인 줄 알고 가입한 상품은 1년 뒤 환매가 중단됐다.  
 
앞으로 A씨 사례 같은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는 사실상 차단된다. '제2의 라임 사태'를 막기 위해 25일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른 것이다. 
 
앞으로 금융회사가 상품을 팔 때는 6대 판매규제(적합성ㆍ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행위ㆍ부당권유ㆍ과장광고 금지)를 따라야 한다. 이처럼 영업 규제를 강화한 동시에 징벌적 과징금도 도입했다. 상품을 판매할 때 과장광고ㆍ부당권유ㆍ불공정 행위를 했거나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판매 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낼 수 있다. 

금소법 주요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소법으로 소비자의 권리는 한층 강화됐다. 우선 모든 금융 상품에 대해 청약 철회권과 위법 계약해지권을 갖는다. 청약 철회는 상품에 가입한 뒤 일정 기간 안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깰 수 있는 권리다. 대출성 상품은 14일, 보험 등 보장성 상품은 보름 안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투자 상품은 주가연계펀드(ELF)처럼 복잡한 투자 구조의 금융 상품에 한해서 일주일 안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금융사가 금소법을 위반했을 때는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 또는 위법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번에 신설된 위법계약 해지권이다. 청약철회권처럼 수수료나 위약금 등 비용 부담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게다가 소비자는 금융사가 보유한 금융 거래 자료(자료열람요구권)도 확인할 수 있다. 금감원 분쟁이나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 찾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금융사가 자료를 정비하고, 시스템 구축하는 시간을 고려해 오는 9월 중순 이후에나 이용할 수 있다.  
 

법 시행 일주일 전 시행령 확정 

금소법이 시행되면 금융회사가 손해배상 입증책임을 증명해야 한다.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금융회사가 증명해야 하므로 법 조항 하나하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했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뒤늦게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이 나온 탓이다. 법률을 시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과 감독 규정이 최종 확정된 게 지난 17일이다. 법 시행일 8일 전에야 구체적인 규정을 손에 쥔 것이다. 금융사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며 현장의 혼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업종이나 상품별 특성 등을 감안한 구체적 내용도 없어 업계의 고심은 깊어가고 있다. 법 시행 전날까지도 시스템 정비를 비롯해 법률 조항 해석 등으로 금융권이 ‘우왕좌왕’하는 이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투자성향(등급)에 맞는 상품만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는데 막상 시행령을 보니 소비자가 (본인 투자등급보다) 투자 위험이 큰 상품을 원할 경우 부적합확인서를 받고 계약할 수 있다고 명시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령에 따라) 다시 영업 매뉴얼도 고치고 직원 교육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모호한 가이드라인도 많아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법 조항을 보면 (소비자가) 위법계약해지권을 쓰면 금융사는 수수료 등 비용을 요구할 수 없게 돼 있다"며 "만약 정기예금을 해지하면 중도해지 이자율을 적용해야 할지, 아니면 약정 이자율로 보상해야 할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금융권 "시간 촉박" 한목소리 

금융사들이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시간이 촉박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개정안’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신용정보법 시행령은 지난 2월 법 시행 6개월 전인 지난해 8월 확정됐다.
 
준비 시간 부족 등에 대한 업계의 우려에 금융당국이 내놓은 해결책은 ‘6개월 유예’다. 시스템 구축 등 준비 기간이 필요한 내부통제기준, 핵심설명서 마련, 자료열람요구권 등 일부 규정은 적용 시기를 6개월 뒤로 미뤘다. 또 새로 도입되거나 강화된 제도의 경우 향후 6개월간 컨설팅(지도) 중심으로 감독하겠다는 입장이다. 중대한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금융사에 과도한 행정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한 관계자는 “(금소법) 법안의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 직전 시행령이 제정돼 실효성은 떨어지고 현장의 혼란만 가중될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차라리 6개월 시간을 두고 법안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준비한 뒤 시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