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두고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스카이뉴스에서 “영국을 분리하거나 영국과 벽을 쌓으려는 시도는 영국과 유럽 시민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며 “이로 인한 EU의 평판 손상도 단기간엔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은 영국을 향한 유럽 국가들의 의심이다. 올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완료한 영국이 자국에서 생산하는 AZ 백신을 유럽 본토로 충분하면서도 신속하게 공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영국에 수출 금지를 경고하면서 “이는 유럽이 공정한 몫을 차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EU 내 백신 접종률이 10%대에 머물며 발생한 정치·경제적 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EU의 백신 접종률은 12% 수준으로 37%인 미국, 43%인 영국과 차이가 크다.
다국적 금융그룹 ING는 올해 1분기 유로존 GDP 감소 폭을 0.8%에서 1.5%로 수정했다. 카르스텐 브제스키 이코노미스트는 “3월이면 유럽의 봉쇄 조치가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한 성장률 예상치였는데 3월 봉쇄 완화 전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봉쇄 조치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된데다 접종까지 속도를 내지 못하자 다급해진 EU의 각국 정부가 영국을 향해 백신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백신 접종을 위해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 정부가 백신의 지적재산권을 보장하는 등 미국과 유럽 관료들은 수억명의 사람들에게 백신을 보낼 레버리지(지렛대)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NYT는 “문제 해결을 위해 WHO가 백신 공급 업체들의 노하우를 개발도상국과 나누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며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자국만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영리단체 국제지식생태계(KEI) 소속 제임스 러브 국장은 “문제는 기업들이 하기 싫다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기업들에 그다지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1일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생산 및 분배가 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도 백신에 접근하게 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압력에 직면했다”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 전까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전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백신의 지적재산권 면제를 논의하는 WTO 회의는 내달 중순 열릴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WTO에 지적재산권 협정(TRIPS) 관련 조항을 일시적으로 면제해 다양한 국가에서 백신을 생산하도록 하자고 요구해왔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