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집권’ 실현을 위한 컴백일까. 아니면 상왕(上王) 정치의 시작인가.
지난해 8월 당대표 임기를 마치고 칩거하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 활동을 재개하면서 해석이 분분하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7일 친(親) 조국 성향 유튜브 채널 ‘시사타파TV’ 생방송에 출연한 데 이어, 친여 성향 유튜브 방송 ‘이동형TV’(18일)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19일)에 잇따라 출연했다. 이 전 대표는 17일 첫 방송에서 “대표를 그만두고 일체 방송 출연을 안 했는데, 요즘 시장 선거가 팽팽해져서 이걸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방송 출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여의도Who&Why]
최근 선거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대해 이 전 대표는 “LH 토지분양권 (문제)까지 생기는 바람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고전하는 걸 두고선 “여론조사가 가진 기술적인 방법으로 장난을 많이 친다”며 “그러니까 그런 것에 속고 낙담하면 안 된다. 앞으로 선거는 20일이나 남았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잇따른 방송 출연은 여당에서도 소수의 측근을 제외하곤 미리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원외 인사는 “직접 공개적인 활동에 나선 건 그만큼 이번 재·보궐선거를 중요하게 보고 계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은 “재·보선 전까지 간헐적 언론 인터뷰를 통해 메시지를 낼 계획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해찬의 ‘20년 집권론’
‘20년 집권론’은 이 전 대표가 2018년 8월 전당대회에서 내건 구호다.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가 세상을 떠난 1800년 이후 22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을 빼고는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 편향성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려면, 20년은 꾸준히 집권해야 한다”는 게 ‘20년 집권론’의 요지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퇴임 기자간담회에서도 “정책이 완전히 뿌리내려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20년 가까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관계도 2000년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해온 정책이 중간에 (2010년) 5·24조치로 10년 만에 차단이 됐기 때문에, 오히려 있던 개성공단까지 폐쇄되고 금강산 관광도 못 가는 이런 상황이 됐다”며 “이런 부분 때문에 안정적으로 정권이 재창출돼서 정책을 뿌리내리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논리는 지난 17일 생방송에서도 등장했다. 이 전 대표는 LH 사태를 예로 들며 “불법으로 번 돈을 징벌적으로 환수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정권이 바뀌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이 튼튼해야 재집권이 가능하고, 재집권이 돼야 제도가 정착되고, 정착돼야 바닥까지 정화된다”고 설명했다.
전당대회의 ‘보이지 않는 손’?
17일 생방송에서 이 전 대표는 “정권이 오래가려면 당이 튼튼해야 한다”며 차기 당대표 선출에 대한 원칙을 밝혔다. 그는 “균형 있게 하고 뚝심 있게 하고 곰처럼 우직하게 하는 당대표가 나와야지, 자기가 스타가 되고 플레이어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침 1시간 뒤, 유튜브 ‘이동형TV’ 생방송 프로그램 ‘더-워룸’에 출연한 우원식 의원은 자신의 당 대표 출마 사실을 알리며 “내 별명이 곰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아니라 우곰이산”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우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우원식 당대표 후보 캠프의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곰 같은 당대표’라는 키워드가 맞아떨어질 수 있겠느냐”며 “사전 합의에 따라 메시지를 맞춘 것”이라고 전했다.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선 이 전 대표의 측근인 윤호중 의원의 활약에 관심이 쏠린다. 윤 의원은 이 전 대표가 대표에 취임한 뒤 당 핵심요직인 사무총장을 지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윤 의원은 ‘이해찬 직계’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네 번째 대통령 만들고 싶다”
다만 이 전 대표는 “(후보는) 우리 당원과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며 지지 후보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누가 하든 간에 그 내용, 우리 시대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을 담는 국가 비전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전 대표는 앞서 지난해 9월 ‘시사in’ 인터뷰에선 당내 양강 후보에 대한 인물평을 남긴 적이 있다.
이 전 대표는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입지전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성격이 굉장히 강하다”며 “(지지층의 호불호) 그런 건 뭐 정치권에서는 있을 수 있는 논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서 무죄 받고 나서 인터뷰한 걸 보면, 본인 생각이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서는 “경험이 아주 풍부한 분”이라며 “기자도 해봤고, 국회의원도 해봤고, 도지사로 지방행정을 오래 했고, 총리를 한 2년 하면 많은 걸 알게 된다. 그런 게 묻어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17일 생방송에선 “대선후보는 당을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후보가 자기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가다가 선거 지면 버리고 가버린다. 당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