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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바이든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규제 철회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1.03.1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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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미 의회는 1962년 국가안보의 위협이 발생할 경우 수입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제정했다.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전 세계로부터 수입하는 철강제품에 대해 25% 추가관세 부과를 결정했다(수입 알루미늄에 대해서도 10% 추가관세를 부과했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관심이 큰 철강수입규제에 대해 살펴본다). 한국과는 관세부과 대신 미국으로의 철강수출물량을 30% 축소하는 약속에 합의했다. 이러한 철강수입규제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통상전문가들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한 철강수입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국가안보 예외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도 자국으로부터의 철강수입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또한 당시 미국은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 이미 40~50%의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상태여서 추가적인 수입규제가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다. 나아가 한국의 철강수출물량 축소는 사실상 WTO가 금지하고 있는 ‘수출자율제한(VER)’에 해당한다. 이처럼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한 철강수입규제에 대해서는 이행 시작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미 ‘무역확장법 232조’ 문제 많아
수출 감소로 한국 철강기업 피해
철강 수입규제 미 경제에도 손실
미국, 세계무역질서 모범 보여야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위협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 철강수입규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결과를 보면 잘 이해가 된다. 당시 트럼프 후보는 철강기업들이 많이 위치한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등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belt)’ 지역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철강산업보호를 약속했다. 이후 이들 지역의 투표결과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정치적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철강수입규제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02년 부시 대통령 시절에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measures)를 발동했다가 철회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당시 유일한 대안으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게리 허프바우어 박사팀의 연구에 의하면 2018년 3월 추가관세가 부과되면서 미국내 철강가격이 9% 가량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철강기업의 수익이 24억 달러 증가했고 대략 8700명의 철강관련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미국 내 철강을 사용하는 다른 산업들은 철강가격 상승으로 국내수요 감소는 물론 국제경쟁력 약화로 수출수요도 감소해 56억 달러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했다. 나아가 이들 기업은 철강산업의 신규 일자리 수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고용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했다. 거기다가 일부 무역상대국들의 보복조치로 철강과 관계가 없는 미국 내 다른 산업들도 피해를 보았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동 연구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수입규제가 미국경제 전체에 순손실을 가져다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특정제품의 수입이 늘면 국내 동종산업이 피해를 본다. 특히 동종산업의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어 수입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게 된다. 또한 이들은 결집력이 강해 집단행동에 나서고 나아가 수입을 막아달라는 정치적 로비도 하게 된다. 한편 특정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는 동 제품을 원부자재로 사용하는 국내기업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나 동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여러 산업에 분산되어 있어 노동자들이 쉽게 집단행동을 할 수 없으며 정치적 힘도 약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보호무역조치를 원하는 집단과 이를 반대하는 집단의 정치적 역량은 구조적으로 매우 비대칭적이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경제효과와는 무관하게 늘 보호무역조치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겪는 철강산업 문제는 세계철강생산능력이 과도하게 확대된 데 근본원인이 있다. 따라서 미국의 일방적 철강수입규제는 이러한 글로벌 문제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철강교역을 왜곡시키고 있다. 특히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철강수출물량을 비자발적으로 축소해야 하는 한국의 철강기업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은 철강산업보호 대신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R&D), 교육, 훈련, 인프라 등을 위한 투자확대를 통해 자국 철강기업과 노동자들이 미래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나은 정책이 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이 다자무역체제를 존중하고 동맹국들과 협력하여 다시 세계무역질서를 주도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적 실익도 없고, WTO규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세계교역질서를 왜곡시키는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규제를 조속히 철회하길 바란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