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서울탈출기] ⑤ 귀촌 4년차 서른다섯, 시골에서 책방하며 삽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17 07:00

수정 2021.03.17 11:57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이제 귀농·귀촌은 은퇴자와 노년층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한해 귀농·귀촌한 인구 중 2030은 44%로, 절반가량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이들은 도시를 떠나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2030 ‘프로 시골러’들은 서울에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일하고, 돈 벌고, 자아를 실현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팀이 한 달간 전국 팔도를 누비며 만난 다섯 명의 ‘도시 탈출기’를 소개합니다.  

 

30대 초반, 어쩌면 귀촌하기 좋은 나이

전북 완주 고산에서 청년 공간 '림보책방'을 운영하는 홍미진 대표. 2017년 5월에 귀촌했다. 김경록 기자

전주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의 한 상가 2층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빼곡한 책과 널찍한 응접실이 나타난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다가 시골 이주 후 책방을 운영하고 싶었던 홍미진(35) 대표와 청년공간을 운영하려는 완주군의 뜻이 맞아 만들어진 ‘림보책방’이다. 
 
홍 대표는 비교적 빨리 귀촌 계획을 세웠다. 할머니가 되어 시골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지만, 더 일찍 내려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의 삶을 떠올리자 한번 쯤 살아보고 싶었던 ‘전주’가 떠올랐다. 전북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낮에 농사짓고 밤에 책을 읽는 주경야독의 꿈을 꾸고 내려왔지만 서울보다 더 서울 같아진 전주의 변화가 낯설었다. 그는 ‘더 시골 같은’ 지역을 찾아 나섰고, 전주 인근 완주에 자리를 잡았다. 
 
녹록지 않은 시골 생활의 시작이었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거금 1700만원을 날리기도 했고, 월세를 구한 뒤 1년을 그냥 놀기도 했다. 막연한 꿈이었던 시골 책방을 현실화시킨 건 2018년 즈음이다. 적당한 책방 자리를 찾던 중 완주군이 청년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알게 돼, 지금의 ‘림보책방’이 만들어졌다. 역시 서울에서 이주한 청년인 윤지은(33), 강소연(38) 대표와 함께 운영한다.  

완주 고산 읍내리의 한 상가 2층에 위치한 림보책방.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과, 공유 서재, 머물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경록 기자

 
림보책방은 책방이면서 청년 공간이다. 노인들이 노인정에 가고, 유치원생이 유치원에 가듯 청년 비롯한 주민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한쪽엔 책을 판매하는 매대도 있고, 함께 책을 읽는 공유서재도 있다. 저녁마다 다양한 교실 프로그램이 열리고, 이 공간을 구심점으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아직은 군의 보조금으로 운영되지만 언젠간 책방 수입만으로 ‘자립’하고 싶다.


 
왜 서울을 떠났나
도시에서 영원히 살 거라 생각 안 했다. 그럼 차라리 기력이 좋을 때 내려가서 뭔가 해보자 싶었다. 서울에선 30대 중반만 넘어도 조직에서 ‘중진’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시골에선 30대면 병아리다. 새롭게 판을 짜보고 싶었다.  
 
왜 완주였나  
처음엔 전주였다. 대학생 때부터 매년 ‘전주 영화제’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건물이 낮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는데, 내려와 보니 옛날에 생각했던 그 전주가 아니었다. 딱 한 시간쯤 더 들어가 보니 원했던 풍경이 나왔다. 그게 완주였다. 그중에서도 고산은 귀촌 인구가 생각보다 많고 커뮤니티가 갖춰져 있는 편이었다.    

청년 및 고산 주민들이 시시 때때로 들러 머물 수 있는 공공적 성격을 띈 공간이다. 김경록 기자

 
실제 살아보니 어떤가
시골에선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둡다. 도시에선 밤에도 뭔가가 굴러가고 있고, 그러다 보면 조급해지고 불안해진다. 자연스러운 리듬에 맞춰 산다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  
 
책방 운영으로 먹고살 수 있나  
청년 공간을 만들려는 완주군과 뜻이 맞아 지금은 보조금을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다. 공공적 성격이 강하기에 책방 운영보다는 공간 제공 및 프로그램 운영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여기는 오후 7시만 넘어도 문 여는 가게가 드물고, 갈 곳이 없다. 청년은 물론 주민들이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자유롭게 책도 보고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사실 운이 좋은 케이스다. 하지만 늘 자립은 염두에 두고 있다. 기능을 보완해 다른 콘텐츠로 공간을 꾸려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왼쪽부터 홍미진, 강소연, 윤지은 대표. 셋 모두 서울에서 시골로 이주한 귀촌 청년들이다. 김경록 기자

 
귀촌을 꿈꾸는 2030에게 하고 싶은 말
자신에 대해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커피와 맛집이 중요한 사람이면 시골 생활은 힘들다. 포기가 안 되는 우선순위 같은 걸 정해보는 게 좋다. 시골에서 살면서 생각과 다른 점이 있을 때 본인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여긴 뭐가 이렇게 없어’라며 좌절하는 경우가 꽤 많다. 서울에서 살던 방식을 그대로 시골로 이식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완주=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