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패가망신과 같은 맥락의 단어가 ‘월북자’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는 일가친척이 북한과 연루됐다는 소문만으로도 사회적 매장을 뜻했다. 가족 중에 월북자나 빨치산이 있었다는 건 치명적인 낙인이었다. 그땐 연좌제까지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는 희석됐지만 그렇다고 분단의 현실 속에서 월북자라는 단어가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여당과 군은 지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 때 북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놓고 비난이 분출하자 당사자의 ‘월북’ 혐의를 공개 거론했다. 한국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총을 맞고 불태워졌다는 충격적 사태 속에 당·정·군이 꺼낸 ‘월북’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피살 공무원에 월북 혐의
광화문 집회엔 살인자 비난
LH 사태선 타깃찾기 난망
국민은 ‘메아 쿨파’ 원해
월북자처럼 한국 사회에서 낙인을 찍는 단어가 ‘살인자’다. 지난해 보수층의 광화문 집회를 놓고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 답변 도중 “집회 주동자는 살인자”라고 발끈했다. 물론 노 전 실장은 당일 “너무 과한 표현이었다”고 물러섰지만 이 발언은 광화문 집회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렀다.
월북자, 살인자라는 거친 단어는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하게 한다. 지지층이 분노를 쏟을 대상을 찾아내 경기장에 세운 뒤 이를 통해 민심을 달래는 방식이다. 콜로세움에서 난타당하는 제물을 보고 정부 여당과 생각이 다른 이들은 아예 언급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내가 소수’라고 여기게 될 수 있다. 즉 반대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잦아드는 침묵의 나선 효과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패가망신 LH 사태에선 콜로세움에 세울 당사자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경기장 운영자인 정부 여당이 경기장에 올릴 대상을 진영 바깥에서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구태라 한들 집권 5년 차를 맞을 때까지 공사 임직원들의 땅 투기 적폐를 왜 방치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곤란하다.
사실 콜로세움 정치의 문제점은 현실을 가상현실로 바꿔 감정적 위안만 주고 끝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콜로세움에 특정 집단, 특정 인물들을 세워 분노를 해소했는데 지나고 보니 현장 공무원들 수준에서 처벌하고 넘어가는 게 진정한 문제다.
정부 여당은 아직 늦지 않았다. 산술적으로 집토끼는 여전하니 중간 토끼를 다시 잡으면 된다. 제대로 속도전으로 수사한 뒤 “썩은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국무총리의 말처럼 내 살이건 남의 살이건 가리지 않고 도려내면 된다. 하지만 지금 정부 여당은 이 사안을 놓고 또 ‘이명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있는지 우려된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건 ‘메아 쿨파(Mea Culpa, 내 탓이오)’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