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동안 얼마나 아카데미가 바뀌었는지 생각해보라. 1929년엔 흑인 후보가 단 한명도 없었는데, 2020년에는 딱 한명이 있다. 정말 많이 변했다.”
미국 최고 권위의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020년 사회자로 나선 스티브 마틴이 던진 뼈있는 농담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주요 부문을 포함한 4개 부문을 휩쓸며 “아카데미가 다양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연기상 부문은 그렇지 못했다. 남녀 연기상 후보 20명 중 유색인종 배우는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신시아 어리보가 유일했다.
15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전체 20명의 남녀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 중 9명이 유색인종이다. ‘미나리’의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은 아시아계 미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파키스탄계 영국인인 ‘사운드 오브 메탈’의 리즈 아메드 역시 무슬림 중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가 됐다. 또 지난해 별세한 흑인 배우 채드윅 보스만도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돼 오스카 역사상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비백인 배우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5명의 감독상 후보에는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 등 아시아계 여성을 포함해 ‘프라미싱 영 우먼’의 에메랄드 페넬 감독 등 여성 2명이 지명됐다. 여성 2명이 감독상 후보에 동시에 오른 것 역시 오스카 역사상 처음이다.
현지 언론은 “오스카가 역대 가장 다양한 연기상 후보를 선정했다”며 “다양성 측면에서 기록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다만 달라진 아카데미를 위한 발걸음이 후보 선정에서 멈출지, 트로피의 주인공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다음 달 열리는 제93회 시상식까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