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조상님들이 지금 사태를 보면 극노하셨을 거야.”
한국주택토지공사(LH)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주민들은 화가 나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과림동에서만 살았다는 김모(65)씨는 “이 땅들은 부모님께 물려받았고 앞으로 자식들에게도 물려주려고 했던 땅”이라며 "화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의 땅과 건물은 신도시 개발 발표로 수용 대상이 됐다. 그러나, 자신의 뜻과 달리 고향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됐다. 12일 오전 기자가 김씨를 만난 과림동의 한 밭에는 묘목이 촘촘히 심어져 있었다. LH 직원들이 땅 투기로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땅이었다. 김씨는 “나무를 이렇게 좁은 간격으로 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농사짓는 사람이면 절대로 이렇게 안 한다”고 말했다. 그는 “LH에서 했다는 게 더 황당하고 화나는 거다. 이런 정부를 어떻게 믿고 살 수 있겠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원주민들만 바보 됐다”
9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왕재(71)씨는 “원주민들만 바보가 됐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 농민도 이걸 알았으면 농지를 구입해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전영복(66) 광명·시흥지구과림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가장 공정해야 할 LH 직원들이 주민들 땅을 수용해서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데 분노한다”며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사람들에게 감정평가를 어떻게 맡기나”라고 말했다.
투기장으로 변한 고향
한 주민은 “우여곡절이 많은 곳”이라며 "이제는 투기장까지 됐다"고 표현했다. LH 직원들의 투기는 그래서 '배신 행위'였다. 주민들은 “역대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었는데 우리를 세 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익수(66) 광명·시흥지구과림주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과림지구만이라도 3기 신도시 계획을 취소하던지 차후에 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더라도 지금은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 받아도 다시 고향 돌아오기 어렵다”
전 위원장은 “신도시로 지정되면 주민들도 돈을 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수용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평균 30% 이상을 양도세로 내고 지방세 등을 떼고 나면 원주민들은 남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안 부위원장은 "평생 농사 짓고 지역을 살리기 위해 애쓴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모든 국민들 특히 영세민들을 위한다고 하는 정부 아니었나. 우리나라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닌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흥=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