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 결사반대!’
서울 용산구 용산구청 뒤편, 이태원의 첫 동네인 이태원1동에 최근 이런 글이 적힌 노란색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이 지역은 2003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에 지정한 한남뉴타운 1구역에 속했던 곳이다. 서울시는 2016년 이곳을 뉴타운 구역에서 직권 해제했다. 그런데 5년 만에 재개발 사업 재개를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꼽힐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 발표 앞두고
주민들 "지분 쪼개기 결사반대"
경실련 "구도심까지 다 투기장화"
공공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정비사업 관리자로 참여한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주도로 사업 진행에 속도를 내고 규제를 일부 완화하겠다고 제안했다. 다만 조합원 분양분이 아닌 일반 물량의 절반을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용산구는 한남1구역도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고려해 달라고 서울시에 신청서를 냈다. 건축물대장을 기준으로 본 노후도와 주민 동의율(16%) 등을 따져봤을 때 합격점(70점)을 받았다고 구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부 발표 5일 전, 179㎡ 땅 주인이 9명으로
이들의 지분율은 각각 11% 안팎(179분의 17~20)이었다. 이들의 주소는 부산, 경북 영덕·울진, 경기도 구리·남양주, 서울 강남구 등에 걸쳐 있었다. 원래 단독주택이던 집은 지난해 3월 한 법인에 팔린 뒤 6개월 만에 지분이 이렇게 쪼개졌다.
법인이 땅을 쪼개 판 시점은 절묘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1일 공공재개발 후보지의 공모에 들어갔다. 이날을 기준으로 재개발사업 완료 후 새집의 입주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날 이후 공공재개발 구역에서 땅을 산 사람은 입주권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태원1동에서 지분 쪼개기가 이뤄진 시점은 정부가 정한 기준일보다 닷새가 빠르다.
이태원1동 사정에 밝은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정보를 잘 알고 있는 기획부동산이 시점에 맞춰 땅을 쪼갠 것”이라며 “통상 빌라를 지어 분양하고 나서야 땅 분할 등기가 이뤄지는데 이 경우는 완전히 반대”라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월 정부의 1차 공공재개발 후보지 발표 직후 성명서를 냈다. 경실련은 "구도심까지 투기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부동산 거품을 빼기는커녕 더 키워 투기를 부추기는 '꼼수 정책'을 당장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공공 못 믿는다”는 주민들
서울시가 이태원1동에서 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때에도 일부 주민들은 기존 집이나 상가를 철거한 뒤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에 반대했었다. 기존의 골목길과 상권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게 이런 사람들의 요구였다.
이태원1동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회석(90)씨는 "뉴타운으로 집도 못 고치고 재산권 행사 못 하고 산 세월이 10년 넘었다. 이번에는 공공재개발이냐"고 말했다. 그는 "주민 전체 의사도 들어보지 않고 몇몇 찬성파들과 함께 재개발 사업을 해서 임대 아파트 '장사'를 하려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태원1동에는 100여 개의 가구점이 모인 골동품 가구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는 유주연(48) 씨는 "(가게) 권리금만 수천만 원에서 억대로 형성돼 있다. 재개발할 테니 나가라고 하면 여기 상인들은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 상가를 짓는다고 해도 지금 이 거리의 분위기와 특수성을 재현할 수 없다. 그냥 이 거리를 보존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찬성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세다. 김도현 한남1구역 공공재개발추진협의체 공동대표는 “공공재개발 공모 당일 접수한 주민 동의율이 16%이고, 공모마감(11월 4일) 때 추가한 것을 포함하면 동의율은 60%에 달하지만, 용산구청이 추가된 내용을 반영해주지 않았다”며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이 다수”라고 주장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의 민원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서도 함께 서울시에 제출했으니 서울시가 (공공재개발 후보지 선정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