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과 이라크의 시차는 2시간, 거리는 약 3000㎞로 비행시간이 4시간 10분 정도다. 1936년생으로 올해 만 84세의 교황에게 해외방문 일정은 만만치 않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황이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까지 받았다곤 해도 이라크의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하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7일까지 확진자 72만3000명 이상, 사망자 1만3500명 이상이 나왔다. 중동에서 이란 다음으로 피해가 심하다. 일일 확진자 수는 지난 4일 5043명, 5일 5127명, 6일 4068명을 각각 기록했다.
84세 고령에 3000㎞ ‘위험한 여행’
하루 확진 4000명대…테러도 불안
기독교·이슬람 공동의 뿌리 찾아
종교간 갈등 극복, 소통·평화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찾은 걸까. 교황의 일정을 살펴보자. 교황은 바그다드를 찾아 이라크 대통령과 총리를 만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바그다드의 동방 가톨릭 교회를 방문한 다음 고대국가 수메르의 도시인 우르를 찾았다. 우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출생지로 여겨지는 도시다. 교황이 우르를 찾은 것은 뿌리가 같은 아브라함 종교끼리 서로 갈등하지 말고 소통하면서 평화를 도모하자고 호소하는 의미가 크다.
교황의 그간 행적과 이번 일정을 함께 보면 방문 취지는 더 뚜렷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즉위한 뒤로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랑과 관용, 그리고 공존을 역설했다. 주요 방문국을 살펴보면 가톨릭이나 기독교 국가는 물론 이슬람·불교 국가와 종교가 사실상 사라져가는 일당독재 공산국가까지 포함됐다. 2013년 교황의 첫 해외 방문은 전임 베네딕토 16세 시절에 약속이 됐던 브라질이었다. 2014년엔 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을 찾았다. 기독교도가 소수인 지역이다. 한국을 방문한 것도 그해다.
2015년엔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 이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찾았다. 또 미국을 찾으면서 공산국가인 쿠바도 방문했다. 2017년에는 이집트에 이어 로힝야족 추방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미얀마와 이웃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2019년에는 무슬림 국가지만 다종교·다문화 외국인 이주민을 품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 미사를 집전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 바로 교황의 뜻이다. 이번 방문도 이라크에서 핍박받아 왔던 신자들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평화와 공존의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