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들으면 때려. 걔들(장애인)은 때려야 말을 들어"라는 말이 진술 조서에 있었는데,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믿기지 않았어요. 이런 자료 볼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지난달 22일 제기된 '거주 장애인 사망사건' 소송을 준비했다는 두 학생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동시에 이같이 말했다. 해당 소송은 장애인 거주시설의 문제점 등을 다투는 사건이었다. 미신고 거주시설에 거주하다 활동 지원사의 폭행으로 한 장애인이 사망한 것이 계기였다. 국가·지자체의 장애인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 그리고 중증 장애인 사망 시 손해배상 책임 문제 등이 쟁점이었다.
이 소송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기획하고 소장 작성에 참여한 소송이다. 로스쿨 학생들의 수업에서 소송을 기획하고 소장을 작성한 것이다. 김남희 서울대 로스쿨 임상교수(변호사)는 "서울대 로스쿨이 본격적으로 이런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장애 인권 클리닉' 수업을 듣는 5명의 학생이 소송에 참여했다. 그들 중 권태훈(27), 김시후(26)씨를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에서 만났다.
"법 있어도 예산 없으면 권리 보장 어려운 현실"
장애 학생은 특수교육법 제3조를 통해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보장받고, 이를 근거로 같은 법 제26조와 시행령 제25조에서 보조교사 지원 의무가 규정돼있다. 권씨는 "당시에 정말 곤란했다"며 "법령이 존재해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권리 보장이 안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이 가진 가치를 현실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선 충분한 예산 지원까지 이어져야 하고, 이 부분에서 법조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맹학교에서 오랜 기간 봉사한 어머니를 따라 시각장애인 봉사를 했던 김시후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김씨는 "당시 담당했던 고3 학생이 EBS 교재 점자판 번역본이 늦게 나와 공부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한 변호사가 시각장애인 시험지 크기가 정당하지 않다고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 과정에서 평가원이 이를 바꿔주는 걸 보며 변호사가 저런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소송 제기 실감 안 나. 이제 한 발 내디딘 셈"
권씨는 "이제야 한 발 내디뎠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에선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데에 있어 인정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한 문제"라며 "장애인을 인정하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원이 이번에 전향적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례는 장애인 사망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데에 있어 노동능력 상실률을 기준으로 평가해 왔다. 중증장애인은 근로 능력이 저하돼있어 원래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없었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인정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변호사 되어 계속 공익에 기여할 것"
이 소송을 주도한 김 교수는 "선례도 없고 절대 쉬운 소송이 아니다"며 "다퉈봐야 알겠지만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로 시작한 이번 학기 임상법학 수업에서도 이 소송을 이어 다룰 것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이번 학기에는 국가나 지자체의 대답을 예상하고 조목조목 따져보는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