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공수처, ‘김학의 출금 사건’ 검찰로 다시 보내야

중앙일보

입력 2021.03.04 00:03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구고·지검을 찾아간 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에 외압을 가한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현직 검사 관련 사건이 어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됐다. 이 사건을 수사해 온 수원지검 형사3부는 “당사자들의 공수처 이첩 요청 때문이 아니라 공수처법 제25조 제2항에 따라 검사 관련 부분을 이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조항엔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 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인데, 이로 인해 정점을 향해 가던 검사 비위 수사가 졸지에 중단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다.
 
이런 사태는 예견됐다. 거대 여당이 밀어붙여 공수처에 영장청구권과 함께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주고 검찰과 경찰에 대한 ‘사건 이첩 강제권’까지 부여해 수퍼 파워 수사기관을 탄생시킬 때부터다. 유사한 경우가 속출할 수 있는 만큼 법 보완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검찰 수사 도중에 안양지청 수사 외압 행사 혐의를 받는 이 지검장과 긴급 출금 요청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이규원 검사가 스스로 “내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 달라”며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를 자처하고 나선 것 자체가 면구스러운 일이다. 현직 검사들이 검찰 수사보다 공수처 수사를 더 신뢰한다는 공개적 입장 표명이라서다. 더구나 이 지검장은 전국 최대 검찰청의 수장 아닌가.
 
이들의 공수처 이첩 요구는 여권이 출범시킨 공수처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감과 진용이 갖춰지지 않은 공수처의 수사 능력에 대한 저평가가 동시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공수처가 당장 수사에 착수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장과 차장만 임명됐을 뿐 검사를 모집하는 단계다. 야당이 공수처 인사위원 추천 명단을 보내지 않아 인사위 구성도 늦어지고 있다. 이르면 올 4월에야 첫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게 공수처 측 설명이다. 만약 공수처가 이 사건을 캐비닛에 넣어둔 채 뭉갠다면 정의 실현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신속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 고위 공직자를 엄벌한다는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공수처가 검사 비위 의혹 사건을 그대로 뭉갤 계획이 아니라면 이 사건을 빨리 수원지검으로 재이첩하는 게 맞다.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을 고려해 보낸 기관에 재이첩할 수 있다’고 규정한 공수처법 24조 3항은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그제 “(사건을) 묵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