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삶의 향기] 아이(ai) 귀찮아, AI가 대신해줘

중앙일보

입력 2021.03.0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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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코로나19가 초래한 비대면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수업환경에서, 학생들의 학업수행태도가 궁금해졌던 나는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노트에 자유롭게 응답하도록 요구했다. 여기에는 아주 흥미롭게 읽혀지는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첫 번째 질문은 “인공지능(AI)이 당신의 일을 대신 해줄 수 있다면, 어떤 일들을 맡기고 싶은가?”였다. 이에 대하여 응답의 절반을 넘긴 가장 많은 내용은 놀랍게도 창조성이 결여된, 즉 ‘생각할 필요가 없는’ 매우 ‘일상적이며 귀찮은 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는 요리, 빨래, 청소, 설거지, 장보기, 집안정리 등으로 묶을 수 있는 ‘가사노동’으로,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사용하는 일이지만, 다수의 응답자에게는 가장 하기 싫은 일로 꼽히고 있었다.

AI에 맡기고 싶은 당신의 일 묻자
빨래 등 ‘가사노동’ 가장 많은 응답
게으른 인간 본성 채우려는 욕망

인공지능은 그 이름에서처럼 인간을 상상 이상으로 능가하는 지능(Intelligence)의 활용영역에서 두드러진다. 그런데도 응답자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를 원하는 능력은 두뇌를 활용하는 ‘지능’이 아닌 단순히 몸을 쓰는 가사노동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집안일’은 인공지능을 덧씌운 기계가 수행하기에 아직은 몹시 서툴다.
 
한 예로 ‘빨래하기’를 생각해보자. 세탁기가 발명된 이후 가사노동에서 가장 힘겨운 일 가운데 하나였던 빨래가 한결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기계가 스스로 빨랫감을 거두고 분리하여 세탁하고, 건조한 후 개는 모든 과정을 해내지는 못한다. 빨래에는 그 처음부터 마무리 단계로의 각 진행 과정에서 인간의 판단과 섬세한 동작들이 개입된다. 때문에 ‘빨래’ 전반을 아우르는 기획과 동작들을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들이 대신해 줄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2017년 미국과 영국 대학의 한 공동 연구조사기관에서 발표한 미래 예측에, 2021년도로 기대되는 인공지능의 ‘빨래 개기’가 있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은 이유이다.
 
두 번째, “AI가 당신의 일을 대신 해준다면, 당신은 그 시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하여 응답자들은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배움이나 창작 활동을 통한 자기계발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휴식에 대한 욕구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오락성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확보된 시간에서 다소 추상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내용들을 피력했다. 그런데 여기서 추구되는 가치 있는 일의 여러 항목과는 대조적으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 흔히 주부(主婦)의 일로 치부되는 집안일이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는 것은 여러 가지로 되짚어 볼 일이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앞의 두 질문으로부터 “이러한 시간이 10년 정도 흐른 후에 그려지는 당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였다. 절반 남짓에 해당하는 긍정적 의미의 응답은, 삶의 질이 향상되어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는 가운데 자기계발에 힘쓰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통한 보다 생산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는 내용들이었다. 반면 이에 조금 못 미치는 부정적인 응답에서는 나태함과 의욕 상실, 능력의 저하 및 퇴화, 유흥을 쫓는 방탕한 삶, 수동적 자세로 불안과 회의를 느끼는 비관적 태도로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에게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미래기술 발달의 지향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치를 두는 ‘의미 있는 시간 활용’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겠지만, 마주하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시간의 활용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이문화’가 점점 더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다수의 응답자에게 집안일은 ‘가치(가) 없는 일뿐만이 아니라 재미(도) 없는 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디지털 문명 안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삶의 방식과 공간이 재편되고 있다. 여기에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으려는 욕망을, 인공지능으로 채우려는 게으른 본성의 ‘본 투비 레이지 사피엔스(born to be lazy sapiens)’가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와 함께 미래에 그려지는 밑그림일지도 모른다. 이는 어쩌면 미래학자들의 경고처럼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통제하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안락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져 가는 무기력한 대다수의 모습으로 미래가 그려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는 다가올 미래에 비춰지는 자신들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