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시작부터 최대한 몸을 낮췄다. 고위 검찰 인사와 관련한 신현수 민정수석 ‘패싱’ 논란에 대해 빠르게 사과함으로써 야당의 공세 수위를 미리 낮추려는 의도로 읽혔다.
신 수석의 거취에 대해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시작부터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면서 격돌이 예상됐던 운영위는 파행없이 진행됐다.
유 실장은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서 ‘맏형’으로 불렸다. 원만한 인간관계가 강점으로 꼽힌다. 그의 국회 데뷔전에선 야당 의원들의 고성이 터지고 비서실장과의 설전을 벌였던 그동안의 국회 운영위 풍경이 연출되지 않았다.
전임자들은 달랐다. 초대 임종석 실장은 운영위 때마다 야당 의원들과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잦았다.
2018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김성태 당시 운영위원장은 자신의 발언 중 청와대 직원이 웃음을 보이자 임 실장에게 “발언대에 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 실장은 “여기서도 말씀 가능한데 따로 나가야 하느냐. 왜 화를 저한테 푸시는지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아무리 국회라고는 하나 의원님들은 막말씀을 해도 되고 우리는 앉아 있기만 해야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국감 운영에 누가 된 데 대해선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2대 노영민 비서실장도 야당 의원들과 자주 설전을 벌였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광복절 집회의 봉쇄를 언급하며 “‘문재인 산성(山城)’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경찰이 버스로 밀어서 집회 참가자들을 코로나 소굴에 가둬버렸다”고 말하자 격앙된 목소리로 “지금 불법 집회 참석한 사람을 옹호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에 비해 유영민 실장은 국회 ‘데뷔전’에서 줄곧 차분하게 대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질문이 나올 수 있는 사안들을 각 수석실별로 취합해 정무수석실에서 이를 최종 검토했다. 유 실장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회의에 임했다”며 “유 실장의 유화적 성격과 노련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전했다.
야당 의원들의 질문은 신현수 민정수석이 사의 표명한 배경과 박범계 장관이 발표한 지난 7일 검찰 인사 과정에 집중됐다. 유 실장은 관련 질문에 “7일 박범계 장관의 검찰 인사 발표 전에 문 대통령의 승인이 있었다”, “재가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공식 재가가 인사 발표 다음날인 8일에 이뤄졌음을 시인했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 대해 “과거 정부때도 있었던 정상적인 절차”라고 주장했다. ‘정식 재가’ 전 ‘승인’을 받은 주체와 방식 등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며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민감한 사안에는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정해진 답변으로 갈음했다. 대부분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른 준비된 답변’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유 실장의 한 마디는 결국 논란을 낳았다. 유 실장은 “(검찰 개혁의)속도 조절 얘기는 박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며 민주당 내 강경파가 주도하는 검찰개혁 드라이브가 대통령의 뜻에 반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