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전략이 이 노선이다. 닫히는 문에 발을 끼워 넣듯 일단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 지사는 “단기 목표 연 50만원, 중기 목표 연 100만원, 장기 목표 연 200만~600만원으로 실시하자”고 제안한다. “월 4만원꼴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용돈 소득에 불과하다”는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의 비판에 이 지사는 ‘병아리도 닭’이라고 응수했다.
재원 방안 등 아직 ‘뇌피셜’ 수준
닭이 못 될 병아리엔 사료 아깝다
구체적 계획 내놓고 검증받아야
가장 큰 ‘신비’는 재원이다. 중기 목표 연 100만원 기본소득에 드는 예산은 52조원이다. 이 지사는 일반 예산 절감과 조세 감면 축소를 통해 조달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예산 구조는 복지 예산 외에는 대부분 경직성 경상비·인건비이거나 인프라 확충·유지 예산이다. 어떤 예산을 깎을 수 있을까. 공무원이라도 줄이겠다는 걸까. 조세 감면 축소? 대기업과 부자들이 비과세나 조세 감면의 혜택을 독차지한다는 것은 강박적 공정 관념이 빚어낸 착각이다. 한국은 40%의 근로자가 면세자고, 상위 20%의 소득자가 소득 세수의 90%를 담당하는 나라다. 조세 감면의 절대액은 고소득층에서 높지만 소득 대비 감면액 비율은 중·저소득자에게서 훨씬 높다(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정치적 자신감을 어느 정도 얻은 걸까. 이 지사는 금기시되던 증세 필요성을 꺼내긴 했다. 기본소득을 위한 목적세 등을 도입하자는 거다. 그러나 먼 이야기다. 병아리가 ‘중닭’으로 클 때까지 증세는 필요 없다는 주장은 변함없다. 기본소득 도입론자들은 국민의 80~90%는 ‘내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아’ 찬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 자원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올 사회적 갈등은 어떻게 감당할 건가.
이왕 기본소득이 정치 테이블에 오른 이상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국가의 틀을 바꿀 큰 문제다. 언젠가 닥칠지 모를 ‘노동 없는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짚어볼 게 한둘이 아니다. 재원 방안, 복지 영향, 경제 효과 등등. 소득주도 성장처럼 ‘선의로 포장된 지옥 길’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도 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막연한 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안을 내놓고 검증받아야 한다. ‘공공의 자원을 전체 구성원에게 돌려주는 일’ ‘공정 가치와 정의에 부합하는 정책’ 같은 가슴 뛰는 정치 언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아리에겐 미안하지만 멀쩡한 닭으로 클 수 없는 병아리에게 사료 값을 들일 수는 없다.
살짝 걱정되는 건 이 지사의 논쟁 방식이다. 이 지사는 월 4만원 지급의 실효성을 묻는 김세연 전 의원에게 “의원님은 (서민의 처지를) 겪어보지 않아 모르시겠지만”이라고 긁었다. 금수저가 흙수저를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는 식이다. 선별복지가 빈부격차 해소에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중산층의 조세 저항을 유발하려는 보수언론의 속셈”이라는 음모론을 들먹였다. 논리와 발화자를 뒤섞는 순간 토론은 끝나고 싸움이 시작된다. 지역화폐의 문제를 지적하는 연구에 ‘얼빠진 국책기관’이라고 윽박질렀던 것처럼.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