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에너지 전담 차관을 신설키로 하면서 정치적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 힘을 싣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임기 중 차관 자리를 늘리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정치권에선 임기말 국정 동력을 유지하려는 정권, 조직 확대를 염원하는 관료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복지부 이어 산자부 차관도 늘리려는 文정부
차관직 신설을 두고 야권에서는 임기말 관료 포섭용으로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감사원의 월성 원전1호기 경제성 평가 감사 결과 발표 이후, 12월 후폭풍으로 공무원 2명이 구속되는 등 산자부 사기가 급전직하했다는 이유다. 지난 22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너지 차관 신설) 법안소위에 참석했던 한 야당 의원은 “에너지 차관 신설의 배경과 기대되는 효과 등에 대해 한 의원이 물었는데 정부에서 제대로 답을 못해 일단 논의가 보류됐다. 제대로 설명을 못하면 흔들리는 관료 사회를 잠재우기 위해 자리를 늘리려 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 행안위 정성희 수석전문위원은 해당 정부조직법 검토보고서에서 “차관 신설 이후 직제 개정 과정에서 실ㆍ국 단위 보조기관이 증설되는 등 조직이 비대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개정안은 현재 산자부 차관이 소관하고 있는 4실, 13국 중 에너지자원실(3관, 1단) 만을 별도 2차관 소관으로 두려는 것”이라며 “효율적이지 않아 실ㆍ국 단위 보조기관이 증설될 수 있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에도 관료 조직 확대에 나섰다. 보건복지부에 복수 차관제를 도입한데 이어,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면서다. 문 대통령은 당시 직제 개편안을 의결하며 “질본은 세계적 모범이 된 K-방역을 이끄는 중심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보건 전담 차관 신설로 공공보건의료 역량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24일에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이 차관직을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국회법)을 발의했지만, ‘공무원 다잡기’ 오해를 피한다는 차원에서 공포시점은 내년 4월로 미뤘다.
역대 정부 임기말 관료에 눈길…차관직 신설은 전례 없어
하지만 현안을 이유로 차관직을 신설한 건 전례가 없다. 우선 집권중 차관 자리를 신설한 것은 복수 차관제를 처음 도입했던 노무현 정부가 사실상 유일하다. 2005년 7월 집권 중반기를 맞은 노무현 정부는 재정경재부ㆍ외교통상부ㆍ행정자치부ㆍ산업자원부 등 4개 부처에 처음으로 복수의 차관을 뒀다. ‘정부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웠음에도, 당시 야당에선 “감투만 늘어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외에 복수 차관직 변동은 정권 교체시점인 2008년 2월, 2013년 3월, 2017년 7월이 전부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관료제를 팽창시키는 건 효율성 측면에서도 안 좋지만, 조직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최근 동요된 공직사회를 잠재우고 국정 동력을 얻는 차원에서 차관을 신설한 것 같은데, 차관 하나 더 늘리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여론 수렴도 없이 임기말에 갑자기 차관을 늘리겠다면 필요성이 잘 소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