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일경 고문에 숨지고, 장남은 교전중 순국
의병활동 중 병사한 차남 홍용환은 "포상 보류"
"1906년 2월 18일이었다. 우리 의병대는 용문동에 들어가서 류하게 되었다. 이때에 더뎅장 거리에 적들이 당도하여서 홍범도한테 귀순할 것을 강요하였고 위협하였으나 홍범도 장군은 귀순하라는 편지를 가지고 오는 놈 7∼8명을 처단하면서 강경히 항의하였고 나중에는 기묘한 수단으로 놈들을 기만하여서 섬멸하였다. 이 사변 시에 그의 부인 단양이씨는 적에게 잡혀서 비인간적 악행을 당하다 못하여서 자기 혀를 자기 이빨로 끊으면서 군대 비밀을 누설치 아니하였다. (중략)
내 부인은 악형을 당하다 못하여서 죽으면서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즉 "여자나 남자나 아무런 영웅호걸이라도 실 끝 같은 목숨이 끊어지면 그뿐인 것이다. 내가 만일 글을 너희들 시키는 대로 쓴다고 하여도 영웅호걸인 그는 아니 들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나와 말하지 말고서 너희들 마음대로 하여라" 하였다. (중략)
그러니 저 악독한 놈들은 나의 처 발가락 두 사이에다가 심지를 끼워 놓고서 불을 달아 놓는 등 별별 악형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내 부인은 절반 죽게 되니 혀를 끊어 벙어리가 되면서도 변절치 아니하고 조국을 위하여 보통 인민을 위하여 원한에 세상을 떠났다."
"정평 바맥이에서 500명 일병과 쌈하여 107명 잃고 내 아들 양순이 죽고, 거차 의병은 6명이 죽고 중상되기가 8명이 되었다. 그때 양순은 중대장이었다. 5월 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숨진 홍범도 장군은 1963년 건국훈장에 추서됐다. 하지만 그간 홍 장군 가족의 독립운동사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보훈처 관계자는 "독립유공자 포상은 기본적으로 본인이나 유족의 신청이 원칙인데, 먼 이국땅에 사는 유족들이 벌써 3대가 넘어가다 보니 신청 건수 자체가 계속 줄고 있다"며 "정부가 주도해 자료 등을 토대로 발굴 작업한 결과가 이번 포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21년 21살의 나이로 병사한 차남 홍용환 선생은 이번 포상 대상에서 빠졌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에 함께 심사를 했지만, 자료가 미비해 포상이 보류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묘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며 유해 봉환 재추진 분위기가 형성됐다. 보훈처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연기된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에 맞춰 유해 봉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수유리 독립유공자 묘역 등 국가관리
현재 수유리 묘역에는 김창숙ㆍ손병희ㆍ신익희ㆍ여운형ㆍ이시영ㆍ이준 등 독립유공자 32명이 안장돼 있고, 안성 묘역에는 6ㆍ25 참전용사 58명이 안장돼 있다.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되면 묘역 개ㆍ보수와 전담 관리직원 배치, 안내ㆍ편의시설 설치 등이 이뤄진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