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중대범죄수사청 밀어붙이기, 레임덕 자초하는 꼴

중앙일보

입력 2021.02.2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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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에서 두번째)이 23일 오전 열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입법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 의원은 ″중수청 시행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전날 대통령이 내놓은 '중수청 시기 상조' 란 메시지와는 반대되는 것이어서 여당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자초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뉴스1]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밀어붙이는 여권의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해충돌·자기모순이란 여론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시기상조”라는 메시지마저 무시한 채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청와대와 여당이 늘 같은 의견일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정부의 핵심 철학인 ‘검찰 개혁’을 두고 지금껏 당·청은 한 몸처럼 행동해 왔다. 결국 대통령 임기 마지막 1년을 남겨 놓은 시점에 대통령 영(令)이 안 통하는 모양새여서 임기말 당·청 갈등이 이미 시작된 것이란 해석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대통령께서 제게 올해부터 시행되는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범죄·반부패 대응 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말씀을 주셨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전달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검찰에 6대 중대 범죄 수사권만 남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안착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뺏는 중수청을 지금 추진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통령 ‘시기상조’ 뜻 여당서 무시
임기 말 당·청 갈등 시작된 건가

그런데 박 장관 전언의 온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바로 다음 날 여권은 속도전의 깃발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김남국,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 여권 초선 16명이 모인 ‘처럼회’는 23일 공청회를 열어 중수청 신속 설치를 주장했다. 황 의원은 “(중수청) 시행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 인권국장을 지낸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중수청을 만드는 데는 3개월도 안 걸린다. 적어도 이 정부 내에서 중수청을 발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대통령이 중수청 속도조절을 주문했다”는 질문에 “공식·비공식적으로 전해 들은 바 없다”며 “중수청법 상반기 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24일 "국회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법을 신속히 통과시키라”며 중수청 설치에 힘을 보탰다.
 
대통령이 전날 반대 의사를 전했음에도 그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공청회를 강행해 중수청 설치에 관한 강경 주장을 쏟아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수청 설치 주장이 급물살을 타게 된 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다. 조국 전 장관 등도 인정한 ‘검찰이 잘하는 특수수사’가 대통령 임기 말 자신들을 겨누는 칼이 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얘기다. 임기가 1년 남은 대통령과 앞으로 정치를 계속 해 나갈 여권 인사들의 이해 관계가 이 대목에서 꼭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검찰이 계속 수사권을 가질 경우 이미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의원들은 대통령이 바뀌어도 수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지금껏 그토록 충성심을 보였던 대통령의 뜻이라도 거부할 수 있는 거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으레 있어 왔던 임기 말 당·청 갈등을 넘어 여권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자초한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