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제재로 동결한 이란중앙은행의 자금을 돌려주기로 예비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특히 라비에이 대변인은 합의의 첫 번째 조치로 한국 동결자금 중 10억 달러(약 1조 1100억원)를 돌려받는 상황을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21일 유정현 주이란 대사와 만났던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도 24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우리는 지급명령(payment order)을 내렸고, 그들이 지급하지 않을 경우 국제법에 따른 대응조치를 할 것"이라고 현지 매체에 밝혔다. 이는 “동결자금의 해제를 위해서는 유관국 등 국제사회와의 협의가 필요하다”(최영삼 대변인)는 한국 외교부의 입장과 상충한다. 외교부는 현재 이란과의 협상이 순조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동결 해제 금액 등 구체적인 사안은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4일 무함마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과 부임 뒤 처음 전화 통화하며 선박 억류 문제를 제기했다. 외교부는 "정 장관은 우리 선장 및 선박의 억류를 조속히 해제할 것을 촉구했으며, 자리프 외교장관이 동결 원화자금 문제와 관련 조속한 해결을 요청한데 대해 우리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양측이 입장을 교환했지만, 특별한 합의점을 찾지는 못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의 경제전쟁 실패" 국내 여론 다지나
자산 동결 해제의 전제 조건인 미국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란이 연일 ‘동결 해제’를 발표하는 것은 정부의 외교 성과로 알리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란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각종 제재가 복원되며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달러화 환율 급등세로 사실상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란 리알화의 환율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 직전인 2018년 5월 달러당 6만 리알 수준에서 최근 30만 리알까지 치솟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의 경제 상황은 (미국의) 제재가 복원된 이후 확실히 악화일로였는데 특히 최근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민심이 흉흉해졌고, 결정적으로 환율이 급격히 오르며 외국 수입품의 가격이 폭등했다”며 “이란핵합의로 경제가 개방되고 유럽자본이 들어오며 풍요로워지는 듯하다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상당수 국민이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건파vs강경파' 6월 대선 앞둔 정치 공방
이와 관련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이란핵합의 탈퇴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가속화하며 온건파인 로하니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로하니 대통령 입장에선 강경파에게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겨 동결자금 협상을 일종의 외교적 성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