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결국 청와대 출신이 꿰찬 초대 국가수사본부장

중앙일보

입력 2021.02.2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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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의 초대 본부장으로 추천된 남구준 경남경찰청장이 23일 오전 경남 창원의 경남경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막강해진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초대 본부장에 현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 출신의 남구준 경남경찰청장이 추천됐다. 남 청장은 경찰청 형사과장·특수수사과장을 거쳐 전문성은 인정되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두고 우려가 나온다. 남 청장은 청와대 근무 경력 이외에도 현 정권 실세이자 본부장 제청권자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교 후배란 점에서 주목받는다. 김창룡 경찰청장과 같은 PK(부산·경남) 출신이면서 경찰대 후배다. 두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를 관할하는 경남경찰청장을 지냈다. 이런 끈이 없다면 그가 본부장 공모에 지원한 다섯 명을 모두 탈락시키면서 발탁될 수 있었을까.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설립된 국수본을 권력으로부터 지켜낼지도 의문이다.
 
검찰 지휘에서 벗어난 경찰은 1차 수사종결권까지 갖게 됐다. 대폭 확대된 권한을 국수본이 행사한다. 그에 따른 책임 역시 국수본 몫이다. 초대 본부장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검찰의 권력을 상당 부분 가져간 경찰이 그 힘을 검찰보다 엄정하게 행사하리라는 기대는 벌써 무너지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사건을 장기간 수사하고도 성추행 유무를 판단하지 않았다. 검찰과 인권위원회가 아니었다면 피해자의 고통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은 경찰 수사관이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은 의혹까지 드러나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가 “국민께 상당히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수사 개혁 상징으로 떠오른 경찰 기관
출범부터 정치적 중립성 의심받게 돼

이렇게 현 정권 실력자가 연루된 사건만 맡으면 경찰은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수사 능력이 모자란 건지 ‘모자란 수사관’ 시늉을 하는 것인지 걱정이 커진다. 정권 핵심 인사와 얽히고설킨 인연에도 불구하고 남 청장이 국수본의 중립성을 지키리란 기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범죄 수사의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검찰총장조차 소신대로 여권 실세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손발이 잘리고 당·정·청으로부터 갖은 수모와 공격을 당하는 걸 목격하고서도 정권의 눈치를 안 볼 수 있을까. “퇴직하면 변호사를 할 수 있는 검사에 비해 신분이 불안한 경찰은 권력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 출신이라면 더 그렇다”는 전직 지방경찰청장의 우려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2011년 문 대통령과 함께 검찰 개혁을 다룬 책을 썼던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대로 된 자치경찰제 없이 국가수사본부를 구성한 건 중앙집권적인 국가경찰을 하나 더 만든 꼴”이라며 ‘경찰 파쇼’를 경고하고 나섰을 정도다. 정권이 수사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무너뜨리면 당장은 수사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지 몰라도 언젠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