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재건축으로 추진합니다.” 서울 강북의 대표적인 재건축 추진 단지로 꼽히는 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1986년 준공)에 최근 이런 현수막이 내걸렸다. 3710가구의 이 단지는 지난해 재건축 사업을 위한 안전진단 과정을 통과하고 현재 정비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ㆍ4 대책 때 밝힌 ‘공공 직접시행 재건축 사업’ 대상지 중 하나인데, 공공 개발 제안을 사양하고 민간 재건축을 하겠다는 얘기다.
이 단지의 소유주 최 모(40) 씨는 “공공주도 재건축에 반대한다는 주민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민간 재건축 추진’이라 적은 현수막을 내걸었다”며 “정부 안 대로 할 경우 재산권 침해가 심각히 우려돼 서둘러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은마ㆍ성산시영 등 대규모 재건축 단지
2ㆍ4대책 핵심 공공개발에 'NO'
광진구 중곡아파트는 '전원 반대'
"소유권 공공에 넘기는 게 부담"
국토교통부가 2ㆍ4대책의 후속 조치로 23일부터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관련 컨설팅을 받을 단지를 모집한다고 밝혔지만, 사업의 첫발을 떼기 전부터 주요 재건축 단지들의 반대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정부가 공공시행 재건축 단지에 대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재초환) 면제와 조합원 2년 실거주 면제와 같은 혜택을 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에는 정부가 지난해 8ㆍ4대책으로 발표한 ‘공공재건축’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쭉 붙어있다. 은마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공공재건축 때부터 반대 목소리를 냈던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2ㆍ4대책 발표 후 조합장이 조합원들에게 “8ㆍ4대책보다 더 불리한 조치로 검토조차 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공공 직접시행 재건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던 단지들도 최근 방향을 급선회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추진위가 최근 소유주 2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36명 전원이 공공 직접시행 방식의 재건축을 반대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2·4 대책 발표 직후에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면제 등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을 공공기관에 넘겨줘야 하는 부분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의 과도한 사유재산 침해다
정부 안대로 추진할 경우 아파트 거래가 끊긴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정부가 공급대책을 발표한 4일 이후 해당 사업이 추진될 곳의 주택을 산 경우 우선 공급권(입주권)을 주지 않고 현금청산을 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역세권 개발 대상지로 꼽히는 서울 강북 연립주택 밀집지역에서는 대책 발표 이후 매수세가 딱 끊겨 ‘거래절벽’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고밀 개발에 '닭장 아파트' 된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의 청년주택의 경우 대지면적 8671㎡에 1086가구(공공임대 323가구, 민간임대 763가구)가 사는 37층짜리 건물 두 동이 들어섰다. 용적률이 962%에 달한다. 정부가 전면 수용해 공공주택을 짓겠다고 밝힌 서울역 쪽방촌의 경우 4만7000㎡ 대지에 공공주택과 민간분양을 포함한 최고 40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2410가구를 짓는다.
민간아파트 단지 중에서 서울역 쪽방촌의 공급 가구 수와 비슷한 서초구 반포 래미안퍼스티지(2444가구)의 경우 대지면적이 13만3115㎡에 달한다. 최고층 32층 규모로 용적률은 269%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재건축 단지 입장에서는 고밀 개발 시 쾌적성이 그만큼 떨어지니 혜택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고밀 개발은 지역적 맥락과 도시 인프라의 용량 등을 고려해 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화·김원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