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고장난 공기 체제 못 고치면 ‘거주 불능 지구’ 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2.22 00:41

수정 2021.02.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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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문명은 질식 중

Earth destroyed by pollution. Global catastrophe concept. [Shutterstock]

인류를 포함한 지구의 모든 존재는 공기 공동체에 속한다. 인류는 이성적 동물이나 도구적 동물이나 유희적 동물이기 이전에 ‘호흡하는 동물’이다. 인류는 지구를 둘러싼 공기 체제, 특히 산소-이산화탄소 순환 체제의 일부다. 공기는 몸속을 드나들면서 끝없이 우리 자신을 형성한다. 공기가 파괴되면 인류도 없다. 예부터 수행자들은 ‘호흡의 힘’을 잘 알았다. 무술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호흡을 통해 지구의 힘을 빌릴 수 있다고 믿고, 신체 동작과 호흡을 조화시키는 역량을 길렀다. 대지와 함께 작업하는 이들 역시 노래를 불러서 공기와 노동을 공명시키는 방법을 익혔다.
 
공기는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준다. 무엇보다 산소를 뿜어내는 식물이 있고,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있고, 공기를 함께 쓰는 동물이 있다. 자동차·컴퓨터·빌딩·공장 등 온갖 기계도 탄소 호흡(연소)을 통해 작동한다. 그러나 인류는 자신과 이들이 같이 공기 공동체를 이룬다고 생각지 않는다. ‘공기의 망각’은 현대 문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벨기에의 페미니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는 말한다. “만물을 구성하는” 공기는 “영구히 존재하면서도 망각을 허용한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다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기의 존재를 잘 잊는다. 인류는 공기가 영원히 같은 상태로 우리를 둘러싸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우리의 착각을 깨뜨려서 공기를 빼앗긴 존재가 무엇인지를 환기한다.

인류의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공기 체제 교란
0.5도 더 오르면 2060년까지 1억5000만명 호흡기 사망
공기 공동체 지구에서 기후위기는 안보 문제의 중핵
재앙 부르는 탄소문명 대신 태양·바람·물의 문명 이뤄야

도시화로 공기 가열 가속
 
불행은 인류에게 공기 체제 전체를 교란할 힘이 있다는 데 있다. 『식물의 사유』에서 마이클 마더는 말한다. “오늘날 인류는 자신이 이룩한 기술적 성취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느라 숨을 헐떡이는 중이다.” 호흡기를 괴롭히는 미세먼지는 우리 기계들 역시 우리와 함께 공기를 나누어 쓰면서 호흡한다는 사실을 잊은 결과다. 우리가 우리 숨통을 조인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석탄·석유 등 탄소 호흡(연소)을 통해 얻은 힘으로 지구를 정복해 왔다.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바닷물을 메워 땅을 생산하고 초원과 사막을 경작지로 바꾸고 언덕을 밀어서 도시를 세웠다. 인류만큼 번식에 성공한 종은 지구에 없다.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인구는 두 배로 증가했다. 영아 사망률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평균 기대수명은 71세에서 83세로 늘어났다.


탄소문명

인류 중심의 집약적 거주 체제, ‘인류의 과열점’인 도시는 점점 커지는 중이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가 47곳에 달하고, 현재 인류 절반은 도시에서 산다. 도시는 혁신과 풍요의 상징이나 스스로 식량 한 톨 생산 못 하는 무산(無産)의 공간이다. 이곳의 인구를 먹이려고 단일 작물 중심의 집약 농업이 시행되고 공장식 축산이 실시되며 바다의 사막이 확산된다. 도시 생활을 유지하려면 탄소를 더 많이 태우고, 질 나쁜 공기를 더 자주 뱉어내며, 뜨거운 공기를 더 많이 내뿜어야 한다. 결과는 공기의 가속적 가열이다. 모든 인간 활동은 쓰레기를 남긴다. 공기 쓰레기가 지나치게 되먹임되면서 지구의 공기 체제 자체가 회복탄력성을 잃는다. 『탄소사회의 종말』에서 조효제가 주장하듯, 지구 가열이 시작되고, 기후위기가 본격화된다. 지구 공기 체제의 변동은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키고 지구에 뚜렷한 지질학적 지문을 남긴다. 학자들은 이를 ‘인류세’라고 부른다. 그동안 인류 번영의 토대였던 홀로세 공기 체제는 종말을 향하는 중이다. 남은 것은 격변뿐이다.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의 『2050 거주불능 지구』는 기후위기가 가져올 정해진 미래를 보고한다. 홀로세 기후의 상승 한계치는 평균 2.0도다. 산업화 이후 탄소 가속 호흡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로 1도가 올랐다.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추어도 여파가 남아 0.5도 정도 더 오른다. 남은 것은 0.5도뿐이다. 만약 2도를 넘으면 쾌적한 지구는 사라지고, 2060년까지 약 1억5000만 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할 수 있다. 시간도 모자란다. 30년 후에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고통의 땅에서 살게 된다.
  
WTO 체제는 기후 체제로 대체
 
지구 가열은 기록적 태풍과 눈 폭풍, 폭염과 한파, 가뭄과 홍수 등을 일상으로 만든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 남태평양 섬들뿐 아니라 뉴욕과 상하이·부산·인천 같은 해안 도시들도 침수된다. 탄소 문명은 지금 익사 중이다. 반대로 말라붙는 곳도 있다. 내전 중인 시리아 같은 곳이다. 공기 체제 변화는 지중해 동부의 강수량을 줄였고, 대지는 습기를 잃고 황무지로 변했다. 오랜 가뭄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떠돌면서 물과 식량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다. 앞으로 기후 난민이 모든 곳에서 출현한다. 동물 난민도 문제다. 코로나19는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낳은 재앙이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안보 문제의 중핵을 이룬다.
 
기후위기는 국제 경제의 작동 구조도 바꾼다. 탄소 호흡에 최적화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기후 체제가 대체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는 국가는 빠르게 도태되는 한편, 선진국과 저개발국가 사이의 분쟁은 극심해진다. 동시에 저탄소 라이프스타일이 질 높은 시민적 삶의 모델로 떠오른다. 일회용 포장재 등 쓰레기를 구매하지 않을 자유가 윤리적 행동의 기준이 된다. 탄소 문명은 황혼에 처했다. 태양과 바람과 물의 문명의 시대다. 지구 정치가 고장 난 공기 체제를 고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거주 불능 지구’밖에 없다.
 
기후 재앙 막으려면 ‘나의 삶’ 달라져야
2015년 인류 출현 후 처음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후변화 임계점인 400ppm을 넘어섰다. 1997년 교토에서 주요 국가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한 지 20년도 안 돼서였다. 약속과 행동은 반대였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도 어른들이 태도를 바꾸지 않자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이 행동에 나섰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대책을 촉구하면서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절규했다.
 
전 세계 동시 출간된 『빌 게이츠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 따르면 “인류는 매년 온실가스 510억 톤을 배출한다.” 2050년 무렵까지 이 숫자를 0으로 만드는 것이 기후 재앙을 피하는 길이다. 게이츠는 에너지 생산에서 핵 기술 활용, 식량 생산에서 배양육이나 식물성 고기 개발 등 기술 혁신을 방법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핵발전을 정답으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 『파란 하늘 빨간 지구』의 조천호나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에서 박재용 등 다수는 태양열·풍력 등 재생 에너지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현재 재생 에너지는 그리드 기술 발달 및 전지 기술의 혁신과 함께 빠르게 경쟁력을 갖추는 중이다.
 
그러나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면 결국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는 자동차와 항공 중심의 교통이 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철도, 즉 이동 수단의 공공화를, 『한 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에선 배출 비중 10%에 이르는 패스트패션 소비의 중단을,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에선 플라스틱 같은 석유화학 제품의 소비 억제를 말한다.
 
기후 재앙을 극복하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더 적게 먹고, 더 오래 입고, 덜 편리하게 사는 것이 답이다. 『우리가 날씨다』에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육식 대신 채식을 권하면서 말한다. “개인의 결정은 아무 힘도 없다는 것은 패배주의자의 신화이다. 큰 성취를 이룰 수 없으니까 시도하지 말자고 주장한다면 비윤리적이다.” 나는 작고, 우리는 크다. 이 말을 믿는 것이 재앙 해결의 출발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