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은 최근 체육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뜨거운 이슈다. 여자 프로배구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이상 25·흥국생명)은 과거 함께 운동했던 피해자의 학폭 폭로로 중징계(무기한 출전 정지)를 받았다. 이들은 앞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남자 프로배구 송명근(28)과 심경섭(30·이상 OK금융그룹)도 같은 이유로 남은 시즌 출장을 포기했다.
인터넷에 “당했다” 폭로 잇따라
가해자 엄벌도 중요하지만
사실관계 꼼꼼히 확인해야
그나마 다행인 건 ‘폭력’에 대한 구단들의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거다. 과거엔 “다들 맞으면서 운동했다” “팀 기강을 잡기 위해 꼭 필요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요즘은 “폭력은 어떤 핑계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다. 일단 팬들이 ‘때리는 선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학폭 폭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마다 “징계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다만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에 올라오는 폭로 글의 진위를 꼼꼼히 확인하는 거다. 가해자가 스스로 학폭 사실을 인정했거나, 명백한 증거 혹은 증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앞서 프로배구의 학폭 폭로가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이미 애꿎은 선수가 가해자로 지목돼 마음고생을 했다. 학폭의 위험성을 일깨우려다가 또다른 ‘억울한 희생자’를 만드는 부작용은 피해야 한다.
A 선수와 관련한 학폭 논란이 불거지자 프로야구 한화 구단은 냉정하게 접근했다. 한화는 19일 밤 10시쯤 B 씨의 주장을 확인한 뒤 곧바로 A 선수를 불러 면담했다. A 선수는 B 씨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 “누군지 전혀 모르는 분이다. (폭로 글에 언급한 일들도) 전혀 기억에 없다”고 부인했다. A 선수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동기생 동료 C 선수도 “나 역시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다. A와는 야구부에서 쉬는 시간을 포함해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는데 누군가를 괴롭히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화는 20일 오전엔 단장을 비롯한 유관 부서 팀장과 실무자들을 비상 소집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장백 운영팀장이 B씨에게 직접 연락해 자세한 상황을 문의했다. 이어 A 선수의 학창시절 담임 교사, B씨가 직접 “과거 일을 증언해줄 수 있다”고 지목한 지인 등과 두루 통화해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한화 관계자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학폭위 개최 기록이 없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춰볼 때, 안타깝지만 구단의 권한 범위 내에서는 더 이상 사실관계 입증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