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광고 만든 박웅현 대표
수원 화성·조선왕조의궤 등 12편
MZ세대 친숙한 전달방식에 초점
“고리타분하지 않게 현대적으로
자극 아닌 감동·가치가 오래 남아”
19세기 지도의 혁신이었던 대동여지도를 오늘날 혁신의 대명사인 애플 광고처럼 소개하자는 발상은 그렇게 나왔다. 애플 국내 광고는 박 대표가 속한 TBWA코리아가 맡고 있다. “패러디니까 목소리도 (오리지널 광고의) 배철수씨 대신 배칠수씨로 섭외했다”고 했다. 밀레니얼-Z세대(MZ세대)가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전달 방식에 초점을 뒀다. ‘조선왕조의궤’는 어린이 목소리로, 마치 그림일기를 살펴보는 듯한 시선으로 조명했다. “서로 다른 게 충돌하고 어울리는 이종결합에서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모두 톡톡 튀는 방식은 아니다. 백제금동대향로 편에선 ‘25개의 산을 품고 65마리 동물이 살고 폭포, 계곡, 호수를 품은 영원불멸의 64cm’라는 자막과 함께 강렬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협주곡 선율이 흐른다. “유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자연과 건축철학이 어우러진 종묘·소쇄원 등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다. “만들면서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좋은데도 친근하단 이유로 외국 문화재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우리 유산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재단 측이 모든 아이디어를 기꺼이 받아들여줬다.”
제대로 만들면 사람들이 귀 기울일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광고에서 중요한 게 시대 문맥인데, 오천년 역사 동안 세계 중심이 돼 본 적 없던 나라가 지금은 ‘기생충’, BTS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계인들이 우리를 이채롭게 보는 게 아니라 우리 문화에 빠져서 함께 즐기고 있다. 우리 시대 책무는 주변의 보석들을 찾아서 ‘이게 이렇게 만든 거다’ 하고 알리는 거다. 서구 문화로 획일화되지 않게, 인류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화유산에 눈 뜬지는 오래 됐다. 첫손에 꼽는 계기는 1993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일기획 대리 시절 ‘그녀의 자전거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빈폴) 카피가 히트했을 즈음이었다. 서문의 첫 문장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를 읽는데, 글자가 벌떡벌떡 일어나는 것 같은 전율에 휩싸였다”고 했다. 누적판매 400만부를 넘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가 문자 세대를 위한 문화유산 해설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아는가’는 21세기 영상 세대 맞춤형이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가치를 알아야 한다. 법화경 보탑도 같은 건 나도 이번에 공부하고 알았다. 첨성대도 수학여행 때 본 게 전부가 아니더라”고 강조했다.
광고 외길 35년째, 넷플릭스 등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에다 디지털 콘텐트까지 넘쳐나는 시대에 여전히 그의 영상이 눈길을 사로잡는 비법은 뭘까. 그는 “자극적인 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광고 초년병 시절에 끊임없던 훈수가 ‘개그·자극을 더해라’였다. 그러나 그런 데 열광하는 사람이 동시에 의미 있고 감동적인 것도 찾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같은 카피가 수십년이 지나도 사랑 받는 이유 아닐까.”
소문난 다독가인 그는 ‘창의성’ ‘인문학’ 등의 키워드로 대학생부터 경영인들까지 자주 찾는 연사이기도 하다. 그에게 인문학은 일종의 내면의 체력 같은 것.
“객관적인 삶의 조건이 바뀌진 않아도, 인문적인 촉수가 있는 사람은 똑같은 출퇴근길에서도 행복을 음미할 줄 안다. 어깨에 내려앉은 낙엽에 고마워하는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 같은 시가 그렇듯. 내가 81학번인데, 나이 많음과 꼰대는 다르다. 나이와 관계없이 듣는 능력, 소통하는 기술을 닦아가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게 풍요롭게 사는 법 같다.”
‘우리는 우리를 아는가’는 지난 8일 수원 화성을 시작으로 4월 26일 뜨거운 전언(유네스코 기록유산 모음)까지 순차적으로 문화유산채널과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