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로부터 "경제성 평가의 핵심 변수인 이용률과 판매단가를 낮추는 과정에 백운규 장관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검찰은 이에 법원의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을 포함한 청와대 관계자에 대한 수사를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경제성 변수 낮춰 잡는 과정서 백운규 지시나 관여 있었다"
檢 "채희봉 전 산업정책비서관 등 靑 수사 진행"
검찰이 이 같은 경제성 평가의 핵심 수치가 바뀐 과정을 캐묻자 산업부 공무원 중 일부가 "백 전 장관의 지시나 관여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들은 "백 전 장관에게 이 과정을 일일이 보고했다"는 진술도 했다고 한다.
감사원 감사 직전 530개 파일을 삭제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기소된 3명 중 정모 과장은 앞서 감사원 감사에서 2018년 4월 백 전 장관에게 월성 1호기를 원자력안전위원회의에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때까지 약 2년 반동안 계속 가동하는 방안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백 전 장관은 정 과장을 크게 질책하며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월성 1호기 경제성이 낮아지는 과정에서 조작 정황을 알 수 있는 다수의 증거물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산업부 공무원들은 2019년 12월 월성 1호기 관련 파일을 삭제할 때 백 전 장관에게 보고하진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감사원 감사 당시 백 전 장관은 이미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1년 3개월여가 지났기 때문이다.
백운규 "지시한 적 없었고, 보고 받은 기억도 없다"
백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변수를 수정하라고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그 과정을 일일이 보고했다고 진술한 데 대해서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며 일부는 해외 출장 중인 시점이라 알리바이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백 전 장관은 영장심사에 출석하면서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국정과제였다"며 "법과 원칙에 근거해 적법절차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말했다.
백 전 장관의 변호인은 "검찰의 직권남용 등 법리 구성이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특정이나 구체적 행위 분담 내용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의 피해자를 한수원과 한수원 관계자 등으로 특정했는데, 경제성 평가는 한수원이 지정한 삼덕회계법인이 담당해 한수원은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산업부가 한수원을 압박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끌어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는 한수원이 이사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일 때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접촉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한다. 또 산업부 공무원들이 문건 530건을 삭제할 때도 백 전 장관이 관련자들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추가로 밝혀냈다.
백 전 장관 측은 "그런 사실은 있지만, 범죄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장관직을 그만둔 상태에서 감사원이 소명서, 답변서 등을 요구하자 실무자들과 통화할 목적이었을 뿐 증거인멸 목적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 "실형·법정구속 김은경 전 장관과 유사…끝까지 봐야"
검찰은 이번 사건 주요 피의자에 대한 신병 확보에 실패했지만 백 전 장관 등 윗선의 개입 정황이 드러난 만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 청와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긴 어려우나, 더욱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짤막한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검찰은 향후 법리를 다듬어 백 전 장관에 대한 기소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법조계에선 이날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당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이날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만큼 최종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직권남용죄는 해당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그 권한을 위법 부당하게 사용해 상대방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됐다는 3가지가 인정될 때 유죄가 된다"며 "백 전 장관 사건이 박 전 장관 사건과 유사하기 때문에 범죄 성립 여부는 끝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