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만 콕 찍어낸다” 매달 200% 성장하는 ‘AI 감별사’

중앙일보

입력 2021.02.08 17:30

수정 2021.02.0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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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바람을 타고 ‘A라면’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겉모양만 비슷한 짝퉁상품이 늘어나 골머리를 앓았다. 
 
A라면 뿐만 아니다. 아마존·알리바바 등에서 팔리는 제품 중 3~10%는 짝퉁이라는 게 정설이다. 지난해 전 세계 온라인 시장에서 거래된 위조상품은 1000조원대로 추정된다. 예전 같으면 회사 측에서 일일이 현장을 찾아 ‘짝퉁 소탕’을 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마크비전 이인섭·이도경 창업자 인터뷰
“온라인거래 커지면서 위조상품 1000조
짝퉁 걸러내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
수작업했을 때보다 비용·시간 확 줄어”

이런 혼탁한 시장을 바꿔보겠다고 나선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몰에서 위조상품을 걸러내는 인공지능(AI) 솔루션을 내놓은 마크비전이다. 지난 5일 서울 강남의 마크비전 사무실에서 이인섭(31) 대표와 이도경(30) 부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맥킨지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공동창업자인 이 부대표와 의기투합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 부대표는 코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EY한영과 호텔예약 플랫폼 데일리호텔 등에서 근무했다. 이 대표는 “로스쿨 재학 중 지식재산권(IP)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위조상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됐다”며 “이때 창업을 마음먹었다”고 소개했다. 

이인섭 마크비전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이도경 마크비전 부대표가 5일 오후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위조상품 삭제하는데 평균 2~3일

마크비전은 아마존·이베이(미국), 알리바바·타오바오(중국), 쿠팡·네이버(한국) 등 10개국 25개 업체와 연계해 위조상품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이 정품의 이미지·가격·리뷰 등을 학습한 후, 이를 기반으로 24시간 내내 해당 업체 사이트에 올라온 위조제품을 찾아낸다.  
 
AI가 ‘위조’라고 판별하면 곧바로 사내 현황판에 뜨고 실시간으로 고객사에 전달된다. 예컨대 ‘짝퉁 A라면’이라고 의심되는 제품을 발견하면 제조업체에 진위를 확인하고, 이를 다시 온라인몰에 요청해 삭제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가 고객사별로 매달 찾아내는 위조상품은 평균 2000~3000개에 이른다. 건당 적발 비용은 수작업했을 때와 비교해 50분의 1 수준이다. 적발 시간은 3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 대표는 “위조상품을 걸러내는 정확도가 90~92%”라며 “여기서 중요한 건 속도”라고 강조했다. 마크비전의 경우 AI가 찾아낸 다음 해당 사이트에서 내려지는 데 평균 2~3일, 이르면 하루쯤 걸린다. 과거에는 짝퉁 업체와 소송을 하는데 3~5년이 걸렸다. 이 대표는 “워낙 긴 시간이다 보니 짝퉁 업체가 폐업해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마크비전은 2019년 1월 창업해 지난해 7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불과 7개월 만에 패션·화장품·콘텐트·식품 분야에서 30여 개의 고객사를 확보했다. 매출도 매달 20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랄프로렌코리아와 삼양식품, 레진코믹스 등이 주요 고객이다. 흔히 위조상품이라고 하면 명품이나 화장품 등을 떠올리지만 웹툰 제작사와 계약했다는 게 흥미롭다. 이도경 부대표는 “웹툰에서 인기 캐릭터가 탄생하면 저작권을 위반한 굿즈(기획상품)가 유통되기도 하는데,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마크비전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e커머스 플랫폼에 등록된 위조 상품을 모니터링하는 현황판의 예시용 이미지. [사진 마크비전]

 

스타트업 마크비전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e커머스 플랫폼에 등록된 위조 상품을 모니터링하는 현황판의 예시용 이미지. [사진 마크비전]

“서비스 7개월 만에 30여 개 고객 확보” 

더러는 위조상품의 매출이 큰 경우도 있다. 과거 길거리 리어카에서 팔던 불법 카세트테이프가 원본보다 더 많이 팔린 것과 비슷하다. 이 부대표는 “고객사 중에 스트리트패션 업체가 있는데 위조상품 때문에 매출이 30%까지 잠식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숫자로 본 위조상품.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러면서 미국의 스타트업 콜라보스페이스의 ‘블록’ 사례를 들었다. 이 부대표는 “블록은 정식으로 제품이 출시되기도 전에 중국·동남아에서 디자인을 무단 도용해 팔렸다”며 “이때 마크비전의 모니터링으로 제거된 위조상품 규모가 150억원어치”라고 했다. 이어 “건강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에서 유통되는 위조상품을 모니터링하는 서비스도 조만간 출시한다. 이 대표는 “특정인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신체에 합성해 범죄에 이용하는 ‘딥페이크’나 저작물 보호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모니터링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온라인서 기업 지키는 브랜드 될 것”

조만간 미국에서도 사업을 시작한다.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육성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이 대표는 “현실 세계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기관들이 있는데, 온라인은 아직 무질서한 것 같다”며 “마크비전을 온라인 공간에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지키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