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탄핵' 기치 이탄희·이수진 당선→첫 번째 사표 거부
임 부장판사는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관해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신장결석 수술을 앞두고 사표를 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수술을 하고 오라”며 거절당했다.
보름가량 앞선 4·15 총선에서 판사 출신인 이탄희·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사법농단 법관 탄핵’을 내걸고 당선됐다. 두 사람은 각각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으로 2017년 3월 ‘사법농단 사건의 피해자이자 폭로자’로 이름을 알렸고 이를 계기로 2년 뒤 여당의 총선 영입 인재로 발탁됐다.
김명수, 文 만난 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지난해 5월 22일, 수술을 마친 임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을 면담해 재차 사의 표명을 했다. 이때 문제의 탄핵 발언이 나왔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당시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며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했다. 이어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대법원장이)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고도 했다.
임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이렇게 정치권 눈치를 보시나 해서 충격을 크게 받았다. 당시는 4ㆍ15 총선 직후였지만 21대 국회 원 구성도 안 된 상황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21대 국회가 아직 법관 탄핵 논의를 하기도 전부터 대법원장이 이를 예견하며 눈치보는 상황을 한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면담 2시간 전, 김 대법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왔다.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원 임명 수여식과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김 대법원장이 참석했다. 면담 전날인 5월 21일은 김 대법원장 부부가 문 대통령 부부와 만찬을 가지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초청 만찬에 문 대통령과 5부 요인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
“CJ(대법원장)의 뜻” 일주일 뒤 與 탄핵 논의 급물살
지난해 12월 14일, 임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에 다시 한번 사의 표명을 했다. 2월 28일 자로 30년 임기 만료 퇴임이 예정된 상황에서 2월 9일 자 정기인사에 맞춰 먼저 물러나면 후임자 인사를 할 수 있어 인사의 걸림돌이 되는 건 피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이번엔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로부터 “CJ(Chief Justice)의 뜻이다, 사표 내지 말고 그냥 있으라”는 답을 들었다. 이에 임 부장판사는 “알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때까진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가 급진전될 상황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여당에서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12월 23일 이탄희 의원이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임성근·이동근 부장판사의 탄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다. 올해 1월 27일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 의원은 ‘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 의혹에 연루된 두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필요성을 설명했다. 한 참석자는 "27일 1차 의총에서 '이동근은 시킨대로 한 사람인데 죄질이 아주 약하지 않느냐'라는 역풍을 우려하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동근만 사표 수리한 날, 임성근 1인 탄핵 결정
행정처 관계자는 임성근 부장판사의 정기인사 사직만 거부한 데 대해 중앙일보에 “임 부장판사는 재판(2심)이 진행중이었고 대법원에서 징계도 받은 사람인 반면 이동근 부장판사는 그렇지 않아 경우가 달랐다”고 해명했다. 그는 ‘CJ의 뜻’에 대해서도 “재판과 징계 전력 때문에 원칙적으로 사표를 수리하기 어렵다는 대법원장의 의사를 설명한 것이지 탄핵 때문에 어렵다는 게 아니었다, 탄핵 논의에 대해선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대법원이 여권 탄핵 기류에 손발 맞춰 준 것"
사법부 내부에서도 김 대법원장이 정치권과 교감이 있었는지 해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정치 중립의 보루인 대법원장이 여권의 탄핵 기류에 손발을 맞춰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사법농단’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