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이후 발전해온 민주주의는, 밀턴의 가정이 실현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아 의회에서 공적 의제에 대해 논쟁하게 한 대의제야말로 대표적인 결실이다. 시민이 일정 기간의 정치 행위를 평가하게 함으로써 자율조정 과정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선거다. 선거를 통해 국가는 과거를 정리하고 내일로 나아간다.
3김은 인물선거, 3김이후 진영선거
문빠처럼 진흙탕 만들어선 곤란
진영의 자율조정과정 복원이 관건
복원 못하면 중도층이 심판할 것
지난해 4월 21대 총선에서는 진보진영이 압승했다. 그러나 그 총선은 진보진영이 이긴 선거라기보다 보수진영이 진 선거였다. 보수진영은 상대적으로 수도 많고 힘도 센 영남을 주요기반으로 두는데도 왜 참패했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이 핵심 패인이었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진영 내부에서 자율조정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국민적 불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박 전 대통령이 실정을 하여 지탄을 받았다면 보수진영은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통해 과오를 성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친박세력은 태극기 부대를 앞세워 진영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봉쇄했다. 그런 반동을 보며 국민은 보수진영에 대해 넌더리를 냈다고 보면 된다.
이제 4월 보궐선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뽑는 선거인 데다 대통령선거를 앞에 두고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도 인물싸움이 아니라 진영싸움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는 진보진영이 보수진영과 닮은꼴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 보듯이 진보진영도 진영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거부했다. 사건이 났을 때 냉혹한 자기성찰을 통해 잘못을 스스로 드러내고 대대적으로 쇄신을 다짐했어야 한다. 그러나 조국 사태 때 진보진영은 총동원령을 내려 검찰에 화살을 돌렸고, 윤미향 사건에 이르러서는 비판하는 사람들을 토착 왜구로 몰았다. 엄연한 반동이다. 지금도 당내에서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당연히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유란 패권을 억제함으로써 향유하는 자유라야 하는데(임상원, 표현의 자유 원리) 진보진영은 지금 패권을 굳히는 자유만을 허용한다.
이런 현상의 한가운데에 문빠가 있다.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빠라는 오빠 부대는 ‘우리 오빠 이외의 다른 오빠를 섬기지 않는다’는 신조를 넘어, 우리 오빠를 위해 남의 오빠를 비난하고, 우리 오빠를 비난하는 모든 사람을 적대세력으로 돌린다. 문빠가 진영 내부의 자율조정과정을 심각하게 경색시키고 있는데도 말깨나 하는 여당 의원들은 그 세력에 편승하는 데 급급하고, 그릇된 팬덤을 민주주의의 양념으로 보는 대통령의 인식에도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진보진영은 그 진영의 걸출한 스승인 최장집·한상진·강준만 교수나 재야의 홍세화·김경률 씨 등을 내쫓았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내적 자율조정 과정을 막고 공론장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문빠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인물을 평가하기보다 진영을 평가할 이번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어느 진영을 택할까. 사과는 했으나 아직도 과거에 무엇을 잘못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보수진영을 택할까, 아니면 보수진영이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며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차단하고 있는 진보진영을 택할까. 두 진영이 내부의 자율조정 과정을 복원하지 않으면, 늘 그랬듯이 게임체인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온 중도층이 바깥에서 자율조정 과정을 마무리할 것이다. 선거란 참으로 아름다운 장치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