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본에서는 지난해 10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하 ‘귀멸의 칼날’)이 역대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한국 극장가에는 27일 개봉하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을 제치고 예매율 1위에 올랐다.
‘센과 치히로…’ 제치고 일본 흥행 1위
다이쇼 시대 귀신과 맞서는 내용
코로나 반짝해금 맞춰 개봉해 대박
오늘 한국 극장가 상륙, 예매율 톱
그전 흥행수입 1위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 거둔 316억엔(약 3355억 원)이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흥행수입 상위권에 애니메이션이 많다. 해외 영화를 제외한 역대 흥행수입 3위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6), 4위·5위는 각각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1997)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으로, 1~5위까지 모두 애니메이션이다.
내용은 다이쇼 시대 일본을 무대로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가 다른 귀살대 대원들과 오니(귀신)에 대항하는 이야기다. 탄지로는 여동생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려 싸운다. 오니가 탄지로의 가족을 죽이고 여동생을 오니로 바꿔버린 것이다. 극장판은 승객 40여명이 행방불명된 무한열차에서 오니와 귀살대가 싸우는 부분을 그렸다.
극장판은 코로나로 원작만화와 TV 애니메이션의 팬들이 늘어난 상태에서 지난해 10월 개봉했다. 일본에서는 긴급사태선언이 처음 나왔던 4~5월쯤은 대부분 극장이 영업을 중단했고, 영업 재개 후에도 좌석의 50%를 줄이는 등 감염 대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10월쯤은 여행을 장려하는 ‘고투 트래블’이나 외식을 장려하는 ‘고투 이트’ 사업을 한참 하던 때라 사람들 이동이 많았다. 나도 이때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영화 ‘스파이의 아내’를 도쿄의 극장에서 봤는데, 좌석의 간격도 두지 않은 상태로 정말 꽉 찬 만석이었다.
영화 ‘귀멸의 칼날’은 개봉 3일 만에 흥행수입 46억엔을 돌파했는데 이는 스크린 독점의 결과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개봉 첫날 도호 시네마즈 신주쿠에서는 총 12개 스크린 중 11개에서 하루에 총 42번 ‘귀멸의 칼날’을 상영했다. 상영 시간표가 “열차 시간표 같다”고 화제가 됐다. 이 시기 할리우드 작품 개봉이 없었던 것도 독점 상태를 만들었다. ‘귀멸의 칼날’을 배급한 영화사 도호의 2020년 11월 흥행수입은 154억엔(약 1634억 원)으로 2019년 11월의 10배 이상이었다.
‘귀멸의 칼날’을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작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던 나는 어른들도 많이 보고 “울었다”는 얘기에 보러 갔다. 액션 장면의 묘사는 박진감 넘쳤고 애니메이션 대국 일본의 저력을 보는 듯했다.
영화의 내용이 시대성과 맞았다는 분석도 있다. ‘귀멸의 칼날’에 나오는 오니는 강한 자에만 가치를 두고 약한 자를 무시한다. 특히 영화의 히어로로 나오는 렌고쿠 쿄쥬로는 오니와의 싸움으로 죽기 직전 ‘오니가 되겠다고 하면 살 수 있게 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인간으로 싸우기를 선택한다. 자기만 잘살겠다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는 일본 사회학자의 분석도 나왔다.
한편 2020년 일본 극장가 전체 흥행수입은 1350억엔(약 1조4335억 원) 정도로 집계될 전망이다. 이는 2019년의 50% 선이다. ‘귀멸의 칼날’의 대히트를 감안하면, 코로나 이후 다른 작품들의 흥행은 대부분 힘들었다. 일본은 애니메이션을 빼면 원래 해외 작품의 흥행수입이 많은 편인데, 코로나로 인한 개봉 연기로 당분간 극장의 상황은 계속 어려울 것 같다.
‘귀멸의 칼날’의 대히트는 작품 자체의 매력과 함께, 코로나로 집에서 지내는 시기에 원작만화와 TV 시리즈의 인기가 늘어났고,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시기에 영화를 개봉한 타이밍이 절묘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인 듯하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