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경기도 광명시 A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오간 각서의 일부다. 각서를 쓴 아랫집 부부는 고성이 오가는 말다툼을 자주 벌였다. 윗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는 수시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광명 아파트 80%, 주민위원회 운영
작년 층간소음 갈등 40% 중재 성과
“이웃 어르신 앞에서 서로 이해 구해”
결국 A아파트의 ‘층간소음관리위원회’가 소집됐다. 동대표를 포함한 6명의 위원과 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위원장이 “인사부터 나누라”고 권하자 윗집·아랫집 남편들이 어색하게 악수했다. 주민 대표들 앞에서 윗집 부부는 소음으로 겪은 괴로움을 호소했고, 아랫집 부부는 잦은 다툼의 원인까지 밝히며 이해를 구했다.
두 시간 이상의 회의 끝에 아랫집 부부는 “윗집 부부의 고통을 이해한다”며 각서를 썼다. 위원회에 참석했던 관리소장은 “그 후로 위층 주민이 소음 피해를 호소한 적이 없다”고 했다.
광명시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말까지 층간소음 문제로 환경관리공단 이웃사이센터에 방문상담을 신청한 비율(가구당 0.042%)이 경기도 내 27개 지자체(평균 0.062%, 아파트 거주 가구 1만 곳 이상) 중 가장 낮았다.
광명시는 아파트별로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를 유도하고 매년 위원, 관리소장에 대한 교육 등을 진행한다. 광명시 전체 91개 아파트 단지 중 79.1%(72개)가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시가 파악한 층간소음 갈등(136건)의 40%가량(53건)이 위원회에서 중재됐다.
위원회 위원은 대체로 아파트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 맡는다. A아파트도 40대 후반인 동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60~80대로 구성돼 있다. 위원장인 80대 주민은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중재하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고 했다.
A아파트 관리소장은 “얼굴을 마주하기까지가 힘들어서 그렇지, 아무리 화가 난 상태라도 일단 위원회에 나와 이웃 어른 앞에 서면 순한 양처럼 점잖아지더라”고 했다. 물론 모든 갈등을 풀 수 있는 건 아니다. B아파트 관리소장은 “되레 중재에 나선 이웃을 고소하겠다는 사람, ‘해결 못 하면 알아서 하라’고 으름장 놓는 사람도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주민자치와 이웃 공동체의 노력이 층간소음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완화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음 분쟁을 주로 다루는 이승태 변호사(경기도 환경분쟁조정위원)는 “소송으로 해결하기보다 이웃에게 불편을 끼쳐 위원회에 상정된 것만으로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백희연·천권필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