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24일 이에 대해 “투자 규모나 시기가 결정된 바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선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경쟁사에게 영원히 밀릴 수 있다.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Deep & Wide] 전문가들이 보는 ‘미국 반도체공장 증설’
정치·경제 요소 고려한 ‘입지’ 결정
그 사이 오스틴은 최근 정보기술(IT)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에 빗대 ‘실리콘힐스’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 애플·제너럴모터스 연구소가 몰려왔고, 오라클이 본사를 옮긴다고 발표했다. 텍사스주에는 개인소득세·법인세가 없어 세금 부담이 적고, 텍사스주립대·라이스대 등에서 고급 인재를 배출한다.
중국 산시(陝西)성에 있는 삼성전자 시안(西安)공장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시안을 낙점한 것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생산거점이 일대에 위치해서다. 하지만 2013년 중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고향이 산시성이라는 사실도 배경으로 꼽힌다.
반도체 투자가 그만큼 정치적이라는 의미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미국 입장에서는 파운드리 양대 산맥 격인 삼성전자엔 ‘북한 리스크’가, 대만 TSMC에는 미국과 무역갈등 중인 ‘중국 리스크’가 있다”며 “인텔·엔비디아·퀄컴의 AI칩, 가속처리장치(APU) 등이 안정적으로 생산되려면 자국 내 생산기지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공급망 타격을 경험하면서 이런 목소리가 커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임인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했던 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귀환(리쇼어링)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대선 공약은 ‘미국 내 생산(Made in All of America)’이었다. 자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돼 있다.
무엇보다 고급 일자리가 생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공장 한 기를 통해 5000~7000개의 고용 창출을 예상한다. 유틸리티·장비·안전 등 간접부문을 포함해 2~3배, 최대 2만여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추정한다.
투자액 170억 달러?…“30조원 될 듯”
팻 겔싱어 인텔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 때 “인텔은 자체 공장에서 제조의 대부분을 유지하면서, 현재보다 더 많은 외부 시설을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외부 시설’로 삼성전자와 TSMC가 꼽힌다. 전 세계에서 두 회사만 10㎚ 이하의 칩 생산이 가능하다.
TSMC는 이미 애리조나주에 짓는 5㎚ 공정의 파운드리(120억 달러)를 포함해 2030년까지 최대 280억 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3㎚ 공정’에 주목한다. 나노 공정이 고도화하면, 즉 회로선폭이 가늘어지면 집적도가 높아지고 저전력·저발열이 가능해진다.
대신 투자 규모는 늘어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신 공정인 3㎚나 5㎚ 풀사이즈라면 30조원은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지와 건물 확보, 용수·전기·가스 설비, 클린룸 공사 등에만 10조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대당 수천억원에 이르는 장비 수십 대를 들여놓아야 한다. 한태희 성균관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사실 5㎚ 이하 반도체 공정에서 11조원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실제론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도 “새로운 부품·장비가 적용되면 최소 30조원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엑소더스’ 우려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TSMC에 몰아주자니 가격 협상이나 공급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정훈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인텔은 서로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도모할 필요가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내 반도체공장 증설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인텔과 협상이 결렬될 경우 ‘과잉 투자’라는 리스크가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평택2공장에 10조원대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동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것이냐가 숙제로 남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향후 증설을 통해 이제껏 오스틴공장의 약점으로 꼽혀온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중장기적으로 코리아 엑소더스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재·문희철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