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없는데 ‘감염병 전담’ 일방적 행정명령”…서울시 “협의할 것”

중앙일보

입력 2021.01.2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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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요양이 필요한 환자의 코로나 치료와 돌봄 서비스를 병행하도록 기존 요양병원을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의 대화에 나섰다. 지난 18일 서울시는 허가 병상의 1%를 코로나19 격리해제자를 위해 사용하도록 서울지역 요양병원을 상대로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현장에선 “의료인력,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데도 협의조차 없었다”는 비판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일방적 행정명령” 반발에…서울시, “2차 협의”

18일 오전 서울시가 시내 첫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한 강남구 '느루요양병원'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근무자들이 방호복과 보호장구를 착용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대한요양병원협회, 감염내과 전문의, 요양병원 병원장과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지정 문제에 대해) 21일 함께 협의했다”며 “19일 1개소(68병상)가 개소한 데 이어 2개소(359병상)를 더 운영하기 위해 관련 병원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박 국장에 따르면 21일 협의는 지난 5일 서울시의사회, 서울시병원협회 등의 협의 이후 열린 ‘2차 회의’ 성격이다
 
서울시가 협의를 강조한 건 그간 “요양병원 측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됐다”는 반발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18일 서울지역 100병상 이상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허가 병상의 1%를 코로나19 격리해제자 병상으로 제출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르면 각 요양병원은 22일까지 병상확보 계획을 제출해야 했다.
 

코로나 치료 후에도 요양병원 못 돌아가는 환자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코로나19 격리해제자의 가족이 ″갈 곳없는 요양병원 코로나 격리해제자를 도와달라'는 청원 글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서울시가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지정을 추진하는 건 기저질환ㆍ고령 등으로 돌봄이 필요하지만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있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격리해제자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일 한 격리해제자의 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갈곳없는 요양병원 코로나 격리해제자를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청원인은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은 또 걸릴 수 있다는 이유로 음성이 나와도 (요양병원에) 입원을 못 한다고 한다”며 “환자가 아니라면 산속에서라도 자가격리를 할 수 있겠지만, 어머니는 24시간 병간호가 필요한 환자다. 제발 이번 요양병원 집단감염 사태로 ‘코로나 주홍글씨’가 박힌 가족과 어머니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인력·시설부족에…‘감염병 전담’ 선뜻 못 나서는 요양병원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병실 거리두기를 위해 환자를 옆 건물로 이송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요양병원 측도 사정은 있었다. 요양병원엔 코로나19 사망률이 높은 고령 환자가 대부분인 데다 기존 돌봄 서비스에 코로나19 치료를 병행하려면 인력과 시설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진은 코호트(동일집단)격리된 상태에서 시설 미화, 환자 이송 등 업무까지 맡아야 하고, 간병인이 구해지지 않을 경우 돌봄 서비스까지 도맡아야 해 피로도에 관한 우려도 있었다.
 
박유미 국장은 “처음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을 운영하고자 할 때 의료인력 등에 대해 많은 분이 부담을 갖고 있다”며 “의료진이 이탈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난 12월 집단감염이 발생해 의료진의 코호트 격리가 끝나지도 않은 채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을 통보받은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인원·교육 지원…요양병원 확진 4단계 관리”

지난해 11월 18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박유미 방역통제관이 서울시 코로나19 발생현황 및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요양병원 측과) 협의해나가면서 풀어나갈 생각”이라며 “19일 개소한 강남 느루요양병원의 경우 개소 전 환자를 소산하고 장비·시설을 배치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30명 가까운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감염내과 전문의를 포함해 실제 환자가 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까지 마쳤다”며 “아직 운영 전인 2개 병원에 대해서도 이처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국장은 “향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던 병원 ▶국립요양병원 ▶시설·장비가 확보돼 의지가 있으며 시가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병원 순으로 우선순위를 두고 요양병원을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향후 요양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①중증, 중등증 증상일 경우 ②무증상·경증이면서 돌봄 서비스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 ③확진자는 아니나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가 필요하며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④코로나 격리해제 후 요양병원에 입원할 경우 등 4단계로 분류해 관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의료법 시행규칙 36조에 따르면 감염병 환자 등은 요양병원 입원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다만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지정은 의료법 위반 등 법적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어 문제는 남아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요양병원의 운영)에는 ‘감염병환자, 감염병의사환자, 병원체보유자 등은 요양병원 입원 대상으로 하지 아니한다’고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