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먹방·쿡방이 지고 ‘집방’이 뜨는 것도 이런 연유다. 지난해 10월 시작한 JTBC 예능은 아예 프로그램명이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일 정도. 각자 마음속에 품은 드림 하우스를 찾아 서울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토피로 고생하던 아이들을 위해 충남 공주에서 직접 딴 자격증으로 ‘셀프 건축’을 하거나 직장 동료로 만난 두 부부가 서울 전세살이를 청산하고 경기 용인에서 따로 또 같이 사는 ‘듀플렉스’를 짓는 식이다. 다둥이 아빠 정상훈과 집짓기를 꿈꾸는 송은이 등 홈투어리스트들은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집이 화두인 시대, 진화하는 집방
지방 삶터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
주거 체험 리얼리티 ‘나의 판타집’
버려진 집 리모델링 ‘빈집살래’ 등
공간에 대한 관심 타고 인기몰이
2019년 3월 MBC ‘구해줘! 홈즈’가 부동산 예능의 포문을 열면서 소재도 한층 다양해졌다. ‘구해줘! 홈즈’가 일반인 신청자의 정해진 예산과 조건에 맞는 매물을 구해주는 ‘중개 배틀’로 실용성을 잡았다면, 이달 시작한 SBS ‘나의 판타집’은 스타가 자신의 로망이 담긴 집에서 1박 2일간 머무르며 체험하는 ‘주거감 체크 리얼리티’를 표방한다. 집 앞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낚시를 하고 마당에서 캠핑할 수 있길 바란 KCM은 전남 여수의 워너비 하우스에서 하루 더 머물기를 청하는 등 엄청난 만족감을 표했다.
“옷도 입어보고 사고, 차도 타보고 살 수 있는데, 왜 집은 살아보고 살 수 없을까”라는 화두도 화제를 모았다. 박경식 PD는 “지난해 8월 파일럿으로 선보인 이후 반응이 좋아 바로 준비에 들어갔는데 꼭 맞는 집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며 “출연자 1명당 후보 집만 50~60채에 이를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라 12부작 시즌제로 우선 진행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토피로 고생해 황토집을 찾게 된 에이핑크 보미처럼 저마다의 사연이 꿈꾸는 집에 녹아있다. 실제 집주인도 과거에 비슷한 고민을 한 경우가 많아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를 토대로 공간과 사람이 교감하는 이야기로 풀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순규 PD는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 서울시는 늘어나는 빈집을 세금으로 사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문의해 보니 개인 간 매매는 불가능하고 주차장이나 양로원 등 공공시설로만 사용이 가능했으나 빈집을 리모델링하는 취지에 공감해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게 됐다. 현재 서울시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관련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지원자 경쟁률만 100:1에 달할 정도로 반응도 뜨거웠다. 황 PD는 “신혼부부 등 내 집 마련을 포기했던 ‘집포세대’가 특히 많았다”며 “주거 안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출산·육아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집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다 보니 취미 등 모든 것을 뒤로 미뤄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방영된 본편이 화제가 되면서 이달 ‘빈집살래 in 서울_확장판’ 3부작을 선보인 제작진은 “서울 외 다른 곳에서도 관심이 많아 부산·제주 등 지역을 넓혀 제작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서울집’과 ‘빈집살래’에 참여한 포머티브건축사사무소 이성범 대표는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서 아파트를 사는 사람과 집을 짓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획일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익대 건축학부 유현준 교수는 “개인 맞춤형 집일수록 보편적(재산상) 가치는 떨어지는 딜레마가 있지만 해당 수요가 늘면서 시장도 차츰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휴대폰 카메라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내가 먹는 음식과 입은 옷 못지않게 나를 드러내는 공간이 중요해졌다. 코로나로 이동 제한이 생기면서 다양한 공간에 대한 욕구를 모두 집에서 해소해야 하므로 그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