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지원금 공개비판 뒤, 이재명 수차례 "당과 갈등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20 19:00

수정 2021.01.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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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정책을 두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이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민주당 내에선 두 사람의 갈등이 향후 더 본격화될 거란 전망이 제기된다. 연합뉴스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소비를 하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 발언을 놓고 20일 여권은 종일 술렁였다. 이 대표가 전날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추진 중인 ‘경기도민 10만원’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대놓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발언은 작정하고 공격한 것 아니냐”며 “지금은 서로 눈치 보고 있지만 결국 나중엔 서로 크게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간 대선 경쟁자인 이 지사에 대해 “장점을 많이 가지신 분”이라며 덕담만 했다. 이 지사의 단점을 묻는 말엔 “제 이름으로 단점을 말하겠나”(지난해 7월, KBS 라디오), “그렇게 깊게 연구 안 해봤다”(지난해 9월,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전날 이 대표의 발언은 과거와 달랐다. 이 대표는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정책을 비판하며 “그런 상충이 없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사가 추진한 정책이 정부 방역과 상충한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 지사 비판엔 ‘여권 잠룡’으로 꼽히는 정세균 국무총리도 가세했다. 정 총리는 이날 아침 MBC 라디오에 출연해 “코로나19 때문에 혜택을 본 국민도 있고, 전이나 다름없는 분들도 있고 피해를 많이 본 분도 있다”며 “피해를 많이 본 쪽부터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또 “지금은 피해를 본 분들한테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반복해 강조했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이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재명 “1인당 10만원 전 도민에 지급”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방역에 장애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경기도청 제공

 
세간의 이목은 자연스레 이 지사의 입에 쏠렸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 화폐로 2차 재난기본소득(1인당 10만원)을 전 도민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가 회의를 거쳐 당의 공식입장을 전달한 지 40시간도 지나지 않아 재난기본소득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다만 지급 시기는 구체적으로 못 박지 않았다. “민주당 지도부의 권고를 존중해 코로나19 및 방역 진행 추이를 면밀히 점검한 후 결정하겠다”는 게 이 지사의 설명이었다.  


이날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엔 당내 일각의 ‘선(先) 방역, 후(後) 재난지원’ 주장에 대한 반박성 발언이 적지 않았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당정이 설 명절 직전 1조원 규모의 온누리상품권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을 들어 “상품권을 공급해서 소비하게 하는 것이 방역에 문제가 없다면, 1인당 10만원 정도의 소액을 지원하는 게 유독 방역에 방해가 된다는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또 “민주당 지도부도 방역을 걱정하겠지만, 저는 일선의 방역 책임자다. 제가 책임감을 느껴도 더 많이 느끼는 그런 권한·책임을 가진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방역망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의 공개 비판(13일)을 반박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다만 이 지사는 이날 수차례에 걸쳐 “지금은 (당과) 갈등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전날 발언에 대해서는 “똑같은 정책에 대해서도 시각이 다를 수 있어서 그렇게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우려가 기우가 될 수 있도록 충분히 생각하고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 지사 측 한 의원은 “이 지사는 총론에 대한 본인 의견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면서 마무리한 것이다. 확전은 없다”고 말했다.
 

호남 민심 놓고 재충돌 불가피할 듯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8일 오후 광주를 찾아, 김희중 천주교 광주대주교를 만났다. 이 대표의 광주 방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 구상에 대해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답한 직후 이뤄졌다. 연합뉴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이 대표와 이 지사의 추가적인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지사가 다음 주 중 이 대표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호남에 방문하는 일정이 예정돼 있어서다. 이 지사는 전날 저녁 KBS 광주·전남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뿌리는 호남, 거기에 더해 대한민국 민주·개혁 진영의 중심도 호남”이라며 호남 민심에 대한 본격적인 호소에 나섰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호남 지역을 둘러싼 두 사람의 대결은 가열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최근 석 달 간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 추이를 보면, 호남 지역에서 이 대표는 37%→26%→21%, 이 지사는 21%→27%→28%로 순위가 바뀌었다. (마지막 조사는 지난 12~14일,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특히 ‘친문’으로 분류되는 민형배 민주당 의원(광주 광산을)이 지난 13일 공개적으로 “이 지사가 차기 대권에 보다 적절하다”고 선언하면서 호남 정가는 술렁이고 있다. 
 
이와 관련 광주 지역의 한 의원은 “최근 이 대표의 사면 주장을 놓고 지역에서 ‘누구 마음대로 사면 운운하냐’는 불만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재명·정세균을 호남의 대안으로 논의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가는 얘기”라고 말했다.
 
오현석·김효성·송승환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